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소풍 전날밤 '비 오지 말라'고 기도했건만

'말표 사이다'나 '삶은 계란'을 기다리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 그래도 봄 소풍은 즐거웠다. 봄 소풍은 주로 학교에서 가까운 산으로 갔다. 요즘은 배달된 치킨, 피자 등이 인기 메뉴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어릴 때는 김밥이 정석으로 통하던 때다. 가끔 부지런한 엄마들이 색 색깔 주먹밥을 싸주기도 하셨는데, 이런 주먹밥은 잘 볼 수 없어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봄 소풍의 최대 복병은 '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소풍날, 일어나 보니 하늘 가득 먹구름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했지만 그래도 비는 내리지 않았기에 김밥을 싸들고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친구를 만나 조잘대며 학교로 가는 도중, 친구가 발 밑을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작은 개구리를 밟았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오그라들만큼 징그러운데, 그 당시는 어땠겠는가. 으악,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될 무렵, 친구는 나에게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개구리를 밟으면 그 날 비가 온다는데? 오늘 소풍 못 가면 네 책임이야!' 그 친구의 원망은 내내 가슴을 짓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소풍은 취소되고 말았다. 나는 쏟아지는 비를 보며 친구들에게 미안해졌다. 나 때문에 봄 소풍을 못 가게 되다니. 같이 등교하던 친구는 나 때문에 비가 오는 거라고 반 아이들에게 설명하자, 모두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래도 그때는 모두들 진지했다. 덕분에 지금도 비 오기 전에 발 밑을 조심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지현주(달서구 송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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