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의 1면에는 '○○○ 리스트' '△△△ 리스트' 등 이른바 리스트 관련 각종 기사가 연일 올라오고 그와 연관된 '루머' 관련 기사가 그 곁을 장식하고 있다. 악성 루머로 인한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이 사회에 충격을 주더니 이제는 각종 리스트 관련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루머는 연예인'기업인'정치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거론된 당사자들의 고소 고발도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루머 공화국, 리스트 정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루머(rumor)에 가장 가까운 한자어는 '유언비어'로 사전에서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 풍문'이라 정의하고 있다. 구분해 보면 '流言'(유언)은 '널리 퍼진 근거 없는 말'이란 의미이고, '蜚語'(비어)는 '남을 헐뜯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 현상에 대해서는 심리학적 해석과 사회학적 해석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상대를 음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목적'을 가진 용어라는 점은 공통된다.
루머의 문제는 우선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고의적으로 유포된 음해성 허위정보라는 데 있다. 관심의 수요가 클 경우 인터넷 같은 정보환경에서 그 유포의 속도와 범위가 빠르고 커지게 된 지금 그 폐해는 과거에 비할 게 아니다. 루머는 주로 불안한 상황을 정확히 정의하기 위한 정보를 개인이 갖지 못하고, 권위 있는 소식통에 의해 확인되지도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사회 상황이 딱 그런 것 같다. 경제는 어렵다고 하는데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그 측근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거론되는 '권력형 비리' 사건은 그 파장의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고, 한 여성 연예인의 자살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또 다른 면은 논란만 뜨거울 뿐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실체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루머가 또 다른 루머를 낳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루머가 생기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한 사회나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부문은 공식적 부문과 비공식적 부문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두 부문 사이의 원활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핵심적 의사결정이 공식적 부문보다는 비공식적 부문에 의해서 주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내부적이고 핵심적인 정보는 비공식 부문이 담당하는 모순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비공식 네트워크가 유달리 발달해 있고 사실상 사회 전 부문에 걸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같은 왜곡된 구조를 고착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만큼 루머는 더 설 자리가 많은데, 여기에 언론의 경쟁적 특종주의와 선정주의적 보도경향이 낳은 무책임한 보도관행이 결합되어 루머의 생성과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루머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근본적으로는 왜곡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당국이나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언론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경쟁적 특종주의나 선정적인 보도 경향을 지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루머를 대처하는 방법에서도 법적인 조치는 마지막 수단이다. 예방책이 우선이다. 루머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관리기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韓非子'(한비자)라는 책에는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도 만든다(三人言而成虎)'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증언을 하면 실제로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사실이 아닌 것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 그 소문은 믿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新語'(신어)라는 책에도 '돌을 뜨게 하고 나무를 가라앉힌다(浮石沈木)'는 말이 전한다. 소문이 끊이지 않고 무성하게 되면 가라앉아야 할 돌이 떠다니게 되고, 떠있어야 할 나무는 가라앉게 된다. 여러 사람이 내는 소문은 곧은 것을 굽은 것으로도 만들 수 있고, 굽은 것을 곧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루머 공화국에 사는 지금 모두가 새겨둘 만한 말이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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