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차 없는 도시

12일과 19일 대구 도심은 텅 비었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와 지구의 날 기념행사가 잇따라 열려 자동차 통행이 몇 시간 동안 중단됐다. 자동차가 없는 도로를 마라토너 수천 명이 달리고,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 수만 명이 메웠지만 도심은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자동차가 차지한 물리적 공간보다 우리가 인식하는 심리적 공간이 더 크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동차 행렬과 경적소리, 뿜어지는 매연들은 오늘날 도심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수백만 명이 생활하는 메트로폴리스조차도 자동차라는 코드를 빼버리면 혈관이 정지한 생명체로 인식된다. 도시를 움직이는 요소가 사람에서 자동차로 바뀌어버린 까닭이다. 사람을 실어 나른다는 본연의 기능이 아니라 자동차 그 자체로 목적이 된 것이다.

주객이 뒤바뀐 현실은 사람들의 의식마저 왜곡시킨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일이라도 차로를 막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보편화했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린 12일 당직근무를 선 대구시청 한 공무원은 "평생 먹을 욕을 하루에 다 먹은 것 같다"고 했다. 자동차 통행이 제한된 불과 대여섯 시간 동안 수백 통의 전화가 쏟아졌는데, 자초지종을 묻기보다 욕설로 시작해 욕설로 끝난 게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언론사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아직 대구마라톤대회 연륜이 짧아 도로 통제를 맡은 대회 운영진의 미숙함도 있었겠으나 시민들의 의식도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차 없는 거리' 행사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열리는 지구의 날 행사는 올해가 10년째로 전국적인 모범이 되고 있지만, 자동차 이용자들은 여전히 막말을 퍼붓는다. 일요일 하루 도심 일부 구간의 통행을 막아 교통 체증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차가 갈 길을 감히 사람이 막는 무례함'에 분노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세계 도시들은 서서히 자동차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도심의 거리 곳곳을 보행자 천국으로 바꾸어나가고, 도심 전체를 자동차 없는 곳으로 만드는 행사도 점차 횟수를 늘리고 있다. 1970년부터 시작된 지구의 날 행사는 참가국이 갈수록 늘어 현재 180개국 이상에서 최소 5억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인구가 600만 명에 이르지만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7시간 동안 도로 120㎞에 걸쳐 차 없는 거리가 만들어진다. 자동차가 사라진 길에는 시민들이 나와 걷고 달리고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즐긴다. 자동차가 사라지고, 비로소 사람이 주인이 되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만은 못하더라도 대구 시민들은 국내외 다른 도시들보다 인식의 변화 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13세계에너지총회를 개최하는 도시에 걸맞은 시민의식으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2005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갑작스런 폭우에도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선수들의 경기에 갈채를 보내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앞으로 더 많은 도로 통제와 자동차 통행 제한을 겪어야 할 대구시민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대구가 자동차로부터 자유로운(car-free) 도시로 진화했으면 좋겠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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