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젊음에게 보내는 편지

특별한 도전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해도 그 과정은 아름답다

권태가 두려운 것은, 시시포스(Sisyphos)의 형벌이 고통스러운 것은 차츰 소멸해가는 삶의 유한함 속에서 무언가에 몰두해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그렇게 열정을 소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느껴지는 불쾌한 기분들, 사라진 소실점과 느슨한 공기감, 식어버린 열정과 깊이의 부재. 이러한 부조리한 공간 속을 벗어나기 위해 우린 매일 밤 '꽃보다 남자'나 '아내의 유혹'에 몰두하고, 롯데백화점 문화 강좌에 참여하거나, 때론 헬스장 한 귀퉁이에 놓인 러닝머신 위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돈다. 아니, 이러한 문명의 끄트머리에 의지해 빛바랜 사진첩을 뒤지듯 사사로운 추억들을 반추하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이것이 人生(인생)이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이런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참으로 시시한 이 시간들이, 이 중첩되는 牌(패)들의 연속이, 결국 내 삶이라고, 우리의 삶이라고 자조한다. 맞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단편만으로 우린 왜 만족할 수 없는 것일까.

특별한 어느 날, 색다른 무언가가 북극해 그 심연 같은 깊이와 색채로 우리의 일상 앞에 불현듯 등장한다. 물리적인 궤도를 이탈한 롤러 코스터는 교묘하게 그려진 가상의 레일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낙하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 앞에 당당히 정차한다. '네가 서 있는 그 권태로운 길은 실상 죽음의 길이며,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얻기 위해서는 어서 나의 객차에 몸을 실어라!' 미노타우로스의 얼굴을 닮은 그는 우리를 향해 다시 이렇게 속삭인다. '안식은 곧 죽음이며, 열정은 곧 삶이다. 인간의 본질을 향하지 않는 사유와 행위는 결국 죄악이며 부질없는 잡념에 불과하다.' 그의 말에 압도당하는 순간, 우린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고,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의 모든 것을 불태워도, 그렇게 소멸되어도 아깝지 않을 절대적인 무언가가 바로 내 앞에 있다. 그것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생명을 담보로 해야만 탑승 가능할 수도 있다. 나를 대신할 사람도, 아니 방법도 없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도전 가능하며, 나 자신만을 향해 열려있다.

하지만 우린 먼저 두려움을 느낀다. 저 성난 황소의 눈빛 앞에서 우린 뜻밖에도 겁쟁이인 스스로를 발견하고 소스라치듯 놀란다. 자기 실현을 향한 파우스트의 용기 있는 선택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그 시대의 낭만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 현실의 우린 늘 새로운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의 신중함은 실상 두려움의 가면이었으며, 돌이켜 보건대 내 인생 최대의 미덕은 절제였던 것이다.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할 때는 그 대상이 부재하고, 막상 그 대상이 자신 앞에 나타나면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는 법이다. '너무 미치지 마라. 겪어보면 모든 게 다 거기서 거기다. 그냥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는 것,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다.' 삶에 지칠 때면 항상 날 찾던 賢者(현자)의 가르침. 열정을 잃어버린 神(신)의 얼굴.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적응할 것인가. 부딪혀 미칠 것인가 참고 견딜 것인가. 시간은 흐른다. 우린 늙는다. 이 가엾은 젊음에게 유보시킬 모험은 단연코 없다. 거리에 눈이 내린다. 눈사람을 만들 것인가? 눈싸움을 할 것인가? 그렇게 머뭇거리다 보면 순백의 눈은 녹고, 거리는 거뭇한 색조로 질퍽인다. 그게 눈이요, 길이요, 인생이다. 일상에 겸손하되 특별한 도전에 두려워하지 말자. 인간의 본질에 충실하자. 80년산 詩(시)들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들의 본질, 노래와 감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늘 승리하는 법이다. 비록 도전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은 아름다운 법이니까. 남극 탐험의 비극적인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Robert F. Scott)처럼 말이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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