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창길은 깊고도 험했습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는 게 없는 인생이었지요. 남편(홍화용·56·서구 비산동)을 만난 이후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밥벌이에만 매달려 산 것 같습니다. 배운 게 많지 않은 남편은 변변한 직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한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주물공장에 취직해 '월급'이라는 것을 가져온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용접일을 하는 일용직으로 '일당'을 받아왔을 뿐입니다.
그나마 지난해 3월 쇠망치가 발등으로 떨어지면서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로는 아예 돈벌이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야 했습니다. 이럴 때는 자식을 셋씩이나 낳은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자식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위안을 삼고 살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극한에 달하자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지요.
그렇게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날 남편 몸에 열이 오르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2월초 쯤이었지요.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고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해 먹였습니다. 하지만 감기 증세는 떨어지지 않았고, 급기야 다리에 시퍼런 멍이 커다랗게 생기기 시작하고, 코피가 터지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겁이 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더니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더군요. '백혈병'. 드라마에서 예쁜 여자 주인공이나 걸리는 병인줄 알았는데 내 남편이 백혈병에 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병은 급속도로 진행됐고 남편은 한 달에 한차례씩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70㎏에 달했던 몸무게는 50㎏대로 떨어졌습니다. 항암치료를 견디기 힘들어서 퇴원해 집에 돌아와도 토하기만 할 뿐 잘 먹지도 못했고 짜증만 늘었습니다.
이제는 골수 이식밖에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골수이식을 위해 시아주버님이 조직검사를 받았지만 골수가 맞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고, 앞으로 골수은행을 통해 기증자를 찾아야만 합니다. 맞는 골수를 찾는다고 해도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입니다. 천만원을 넘는 이식수술비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간호사가 "골수은행 등록을 할 테니 검사비 등 30만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알려왔지만 당장 수십만원도 제 수중에는 없습니다. 당장 또 어디서 돈을 꾸어와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울 뿐입니다.
남편이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집안은 한층 엉망이 됐습니다. 당장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여기저기 손을 벌리다 보니 빚만 700만원을 넘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동네 친구에게 30만원을 빌려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인 아들, 딸의 급식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지만 급식비가 밀려 자식이 학교에서 창피를 당하는 일만은 면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요즘 가장 볼 얼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항상 바쁜 삶에 쫓겨 가족간의 정 같은 건 뒷전이 된 가엾은 아이들. 한창 공부에 매달려 부모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투정을 부려도 시원찮을 나이에 우리집 아이들은 학원 한 번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고, 뭘 사달라고 졸라본 일도 없습니다.
이럴 때는 제 몸이라도 성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달부터 파출부 일을 해 한 달에 30만원 가량을 벌지만 일거리를 찾기도 쉽잖고 허리통증과 관절염 등으로 매일 일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벌이라고 남편 간호에 전념할 수 없는 것도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무균병동에 있는 남편은 월·수·금요일 낮 1시 30분~2시 사이에만 면회가 가능하지만 일을 마치고 뛰어오면 면회시간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우리 가족이 끼니 걱정하지 않고 단란하게 사는 날은 오지 않는 걸까요? 몇 푼 되지 않는 벌이였어도 가계를 책임졌던 가장(家長)이 있었던 지난 날들이 한없이 그리울 뿐입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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