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어서 걸려온 어느 후배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얼굴이 참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이렇게 두들겨 패다니요. 그것도 여학생들이…"
얼굴이 엉망이 된 여고 1학년생 딸아이를 병원으로 옮겨 놓고 파출소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그 후배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고 있었고 기가 막혀 울먹이고 있었다. 늘 남을 먼저 배려하며 살아왔고 평소 침착하기 그지없던 후배의 흔들리는 목소리에 내 가슴마저 먹먹해졌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이며, 우리 교육의 현실이 정녕 이것밖에 안 되는가. 자괴감과 상실감이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착한 딸아이가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밤 늦도록 공부하고 돌아오다가 느닷없이 코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것도 패거리를 지어 돈까지 요구하며 집단폭행을 일삼은 여고생들이 중학교 때 같은 반 학생들이었다니…. "공부만 잘 하면 다냐"가 폭력을 행사한 이유였고, "부모에게 알리지 말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배의 가슴앓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주먹질을 한 여학생들은 애초에 죄의식이 없었고 그 부모는 배짱을 내밀고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경찰관조차도 "결국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는 식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식을 둔 같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어느 여고생의 고백이 새삼 떠오른다. "요즘 애들 한마디로 무섭습니다. 개념이 없어요. 그냥 싸가지 없다고 패고, 맘에 안 든다고 발길질을 해요…."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본다. 친구들에게 감금된 채 집단 폭행을 당하던 여학생이 공포의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폭력 여학생들은 다쳐서 신음하는 친구에게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이토록 잔인한 폭력의 장본인들이 우리의 누이들이라니….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장차 이 땅의 어머니로 살아갈 것이라는 현실이 슬프다.
우리는 어쩌다가 우리의 딸들을 이렇게밖에 키우지 못했는가. 순수하고 온유해야 할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들이 저지르고 유포시키는 끔찍한 폭력 동영상을 보면 할말을 잃는다. 母性(모성)을 상실한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듯이, 女性(여성)을 포기한 여성은 더 이상 여성이 아닌 것이다.
저녁 모임에서 만난 대구의 한 고교 교사는 "여학생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웃었다. 자칫하면 性(성)문제에 휘말려 들거나 폭력교사로 몰리기 일쑤여서 여학생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학생이라고 다 그럴 리도 없고 또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교사의 정당한 훈계와 합당한 체벌조차 터부시하는 오늘의 왜곡된 교실문화를 풍자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도대체 스승도 제자도 없고, 여학생이 남학생 같은 오늘의 우리 교육현실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결국은 부모와 가정의 책임일 것이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문화에서 파생된 결과일 것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폭력적인 게임과 괴기한 장면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아닌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무능한 가장으로 치부되고, 요령과 눈치로 돈만 잘 벌면 유능한 아버지가 되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닌가. 법과 질서를 존중하기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를 더 앞세워 온 우리 사회의 딸들인 것이다.
경제난으로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 홀대당하는 아버지를 보며 성장한, 남자 교사보다는 여선생님의 목소리가 더 많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생활해 온 우리의 딸들이 남성 부재의 사회와 남성 상실의 시대를 고발하는 것은 아닌지.
날로 늘어가고 흉포화해 가는 여학생 폭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도 같은 여학생 때문에 상처받고 눈물짓는 어린 영혼들을 생각해 본다. 구호로만 남은 공교육과 잃어버린 인성교육 현장에서, 그리고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조향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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