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구름을 들고 가는 사람 / 장옥관

거리에서 봤어요,

구름을 들고 가는 사람을

네모난 하늘을 오려들고 가는 사람을

날아가는 새들을

가뒀다 풀어주었어요.

육차선 큰 도로 한복판에

텔레비전을 틀어놓았어요

아저씨들이 맞잡고 들고 갔지요,

엄청나게 큰 그 거울을

장옥관의 동시집 원고를 읽었다. 평소 그의 시를 즐겨 읽었다면 그의 동시가 그의 여느 시와 다름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담담하다. 색깔의 수가 한정된 크레파스 그림처럼 장옥관의 섬세한 언어 감각과 잘 어울린다. 섬세한 것들의 색채란 대체로 흑백 무늬인 양 단순하다. 동시와 시의 간격을 무시하면 동시의 즐거움은 시의 즐거움과 다를 바 없다. 아이의 시선은 곧장 시인의 시선과 겹쳐지는 일이 다반사일 동시의 세계에서, 구름과 새와 텔레비전은 생물이다. 구름의 심장은 새에게도 있고 텔레비전에도 있다. 그 경계 안은 정령주의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새의 심장이 텔레비전에 있는 것도 심상찮은 일이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이 사소하고, 사소한 모든 것이 놀라운 동시를 읽는 즐거움은 기실 시인이나 일반인에게 낯선 경험이다. 오래 전 읽었던 동시와 지금 동시와의 간격을 확인해 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동심이라는 세계와 멀어져 있는지 알겠다. 그의 동시집을 기다리면서 구름을 들고가는 사람의 천진함과 그 천진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삼투압 현상을 눈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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