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통령 낙향 얘기가 처음 흘러나올 무렵 찾아본 봉하마을은 기대 밖이었다. 가옥들은 낡고 옹색했으며 대통령 고향이라 해서 요란을 떤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난한 고향마을에 섞여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대통령 얼굴이 다시 쳐다보인다고 방문객들은 한마디씩 했다. 역시 '서민 대통령'이라고 떠들 만한 사람이구나 하는 반응들이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아보니 완전히 딴판이었다. 수십억 원이 들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는 측근들 주거용이라는 빌라 단지, 경호원 숙소 같은 신축 건물을 거느리며 손바닥만 한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사저 턱밑에서는 다른 사람이 살던 생가를 사들여 새로 짓는 복원공사가 한창이고, 주변 야산과 하천은 훤하게 손들을 봤거나 정비 중이었다. 그림 같은 성채를 쌓아 자자손손 세거지라도 닦자는 것인가. 현지에서는 형 건평 씨가 여러 땅을 사들인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노씨 집안의 불행은 이런 탐욕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대통령 한 번 지낸 것으로 집안 팔자를 왕창 고치려 든 허영 허세가 지금의 패가망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들어가기 전 전세살이를 했다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며, 낙향을 하고 싶으면 형편에 맞게 처소를 장만하는 것이 정상적인 퇴임 후 처신이다. 여기저기 손 벌려가며 고대광실을 지어야 하고 나라예산까지 끌어다 온 동네를 꽃단장하겠다는 것은 보통 얼굴로는 부릴 수 없는 욕심이다. 끝난 권력에 매달리는 미련 따위는 다른 나라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귀향이 자연스러운 미국의 대통령들이나 유럽 정치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어떠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프랑스 드골은 가방 하나 달랑 들었을 뿐이다.
최초로 낙향했다는 사실을 자랑삼으려면 거기에 걸맞은 시골생활이어야 한다. 조용하게 저술이나 강연 활동으로 전직의 품위를 지킬 일이고, 생태환경에 관심이 있다면 풀 한 포기라도 제 손으로 땀 흘리는 자세여야 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손가락질받는 후원자에게 신세 지는 수십억짜리 생태복원사업이 필요한가. 그런 생각 자체가 권력의 찌꺼기를 탐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은 불 같은 성격이다. 5공 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국회의원 명패를 집어던지던 모습에서, 2004년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한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을 비난하던 기자회견에서 그런 일면을 봤다. 그 말고도 불의한 일이나 남의 잘못에는 무섭게 폭발했던 성질이다. 그런 사람이 돈 스캔들로 시끄러운 자기 가족은 감싸고 도느라 정신이 없다. 흰 돈이니 검은 돈이니 꽁무니 빼기 바쁜 아내 아들 조카사위 처남을 기를 쓰고 두둔하고 있는 것이다. 남상국 사장 사건 때만 해도 돈 받은 형부터 꾸짖고 공개 망신을 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가족들이 조신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곤경에 처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남들은 불륜이고 자기들은 로맨스라 믿는 지독한 인지부조화가 불행의 싹을 키운 것이다.
정치인 눈치는 남다르다고 한다. 먹을 돈 안 먹을 돈을 귀신같이 알아채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까지 올랐으면 그런 눈치쯤은 고수의 경지일 것이다. 아무리 오랜 친분이라지만 박연차라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기업인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내는 점심에 공짜는 없다. 10원을 쓸 때는 100원, 1000원의 이문을 쥐겠다는 계산이 서기 마련이다. 영리한 노 전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권세가들에게 '기마이' 좋은 그의 속셈 또한 훤히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위태로운 사람에게 청와대 뒷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노씨 일가는 대통령 명예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은 인생역전에 두었다. 검찰 수사를 보면 온 집안이 대통령 한방으로 한몫 잡으려 한 혐의는 차고 넘친다. 노 전 대통령은 어제 홈페이지를 폐쇄하면서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었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박탈한 것이다. 그런 그를 민주당 대변인은 "모든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다"고 했다. 시인은 말한다- '역사는 무서운 것입니다…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하는 것입니다'(박노해 시인 시 '역사 앞에서')
金 成 奎(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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