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구사과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영감을 얻었다는 뉴턴의 에피소드는 얼핏 꾸며낸 얘기쯤으로 들린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현상을 사과의 낙과와 같은 원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어떻게 법칙을 발견하게 됐느냐는 질문이 쏟아졌을 것이고,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았던 뉴턴이 사과 이야기를 갖다 붙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파다했다. 인간의 원죄 조장, 트로이 함락 같은 재앙을 불러온 사과에 과학 법칙 발견이라는 영예를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훗날 그의 주치의가 낸 '뉴턴 전기'에서 사실로 판명 났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가 인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명쾌하게 해 주었다.

대구시가 22일 뉴턴의 사과나무와 같은 품종인 '켄트의 꽃' 한 그루를 농촌진흥청에서 기증받아 동구 평광동 대구사과 집단재배단지에 심는 이색행사를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79세의 '홍옥' 사과나무 옆 자리였다. 대구시는 관광 효과뿐만 아니라 학생, 청소년들이 뉴턴의 사과나무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워나갈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능금의 원조 옆에 뉴턴의 사과나무를 심는 일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나무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는 너무 차이가 난다. 뉴턴의 사과나무가 세상의 주목을 잃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데 비해 홍옥의 이야기는 폭 1m도 안 되는 안내판에 남은 정도다. 1960년대 중국식 표기인 사과(沙果)가 아니라 능금이란 이름으로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영광의 몰락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구온난화로 대구능금의 명성을 되살리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러나 사과 역사가 가장 긴 장점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요 '능금꽃 피는 고향'을 30년 만에 되살린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구에 서양 사과가 처음 심어진 1892년 미국인 선교사의 이야기에서부터 100년 역사의 평광동 사과밭, 산업화시대 허기와 영양 부족을 달래준 최고의 먹을거리였던 홍옥과 국광 이야기까지 상품 가치는 충분하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구시의 스토리텔링 감각이 필요하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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