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흰 벽으로 된 네모진 방, 보통 갤러리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단정한 실내 배경은 전시물을 더 돋보이게 하고 관객은 작품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의 전형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이런 전시 공간이 예술을 일상 생활과 분리시키고 화석화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진 권위나 상업성은 다양한 감상자 층의 접근을 제한하는 면도 없지 않아서 기존 관행과 제도들의 폐쇄성과 한계를 보완하고 그 속박으로부터 예술을 구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시도된다. 작가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적다. 그래도 작업실을 제공하는 '입주 프로그램'과 그곳에서 여는 '오픈 스튜디오' 전이 가장 빈번히 시행되고 있는데 지금 대구의 한 재래시장 안에서 이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재래시장들이 벌써부터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다 알지만 어떻게 하면 이곳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작가들의 처지 역시 그렇다. 거기다 삶의 현장과 무관한 듯 보이는 미술이 이곳에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는지. 시장 내 빈 점포들에 예술가들을 입주시키고 여기서 작업도 하면서 시장의 외관을 디자인하는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되면 그들 사이에 어떤 상생이 일어날지 기대하는 것이다. 공공 미술이란 이름으로 어색하게 한시적인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에 거는 바람은 크고 여러 가지다. 예술이 유리 철강건물 내에서만이 아닌 양곡상이나 잡화점, 생선 가게 옆에서 어울리는 것을 보게 될 때 비록 시장 경기의 부흥에 직접적으로는 어떤 대안도 해결책도 못되더라도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라도 된다면 좋겠다.
방천시장 현장을 개막에 앞서 미리 한번 나가 보면 단순한 볼거리라기보다 작가들마다 어떤 고민을 안고 씨름 중인지 경과를 엿볼 수 있다. 벽화나 그래피티(낙서), 간판 디자인, 사진 이미지들을 보고 그리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한 작가는 먼저 시장 내 이곳저곳에서 구입한 건어물이나 채소들을 얹은 작은 곽들을 벽에 붙여놓아 예술이 어떻게 삶의 현장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지를 보여주는 설치작업 중이었다. L.A 현대미술관(MoCA)이 소장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Landscaping'(1978)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조지 험스(George Herms)란 작가가 그 지역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각종 잡동사니들을 마치 표본들처럼 격자로 꾸민 장에 진열해 놓은 것인데 그곳의 문명과 생활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이 시장 안의 현장을 상징하는 생물 오브제들을 보며 지금 이곳 현실의 지정학적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곳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은 디자인의 힘으로 가시적 세계의 외관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시각 생활을 바꾸고 그러면 우리의 삶도 바뀐다. 예술과 일상 생활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은 예술가들이 결코 단념할 수 없는 이상이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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