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달과 더불어 호흡한다. 달은 보름을 고비로 차고 이지러지기를 반복한다. 바다는 달의 순환에 기대어 날숨과 들숨을 쉬며 물을 밀고 썬다. 독도 앞바다 펑퍼짐한 가제바위는 썰물이 되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밀물이 들면 찰방찰방 물결이 바위 위로 넘나든다.
가제바위에는 달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에 따라, 포식하고 굶주리기를 반복하는 생물체가 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흔히 '보찰'이라고 부르는 '바위손'. 독도를 드나드는 울릉도 사람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 보찰'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온다.
보찰은 우리나라 모든 해안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울릉도 사람들이 독도 보찰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씨알이 굵고 향미(香味)가 뛰어나다는 것. 울릉도에서는 보찰이 씨가 말라 맛보기가 쉽지 않다. 독도 것은 속 알맹이가 제법 큰 편이어서 주로 안줏거리로 삼는다.
보찰은 삶은 후 딱딱한 입 부분을 떼 내면 속살이 나오는데 그 속살부위를 먹는다. 노동에 비해 입으로 들어가는 게 크게 없는 별 신통찮은 먹을거리이다. 삶을 때 몇 번 문질러 씻어도 간기가 남기 때문에 차라리 삶은 국물을 마시면 먹을 만하다.
실제 직접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찰 삶은 물 두 사발만 마시면 다음날 대변에 미역국과 흡사한 바다냄새가 난다는 것. 이런 이유로 이곳 민간에서는 보찰이 간기능 회복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몇 년 전 간염에 걸려 치료를 포기하다시피 한 울릉도 사람이 보찰 한 자루를 먹고 완쾌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보찰은 바로 '바위손'의 다른 말이다. 보찰은 마치 홍합과 같이 바닷물이 맞닿는 바위틈에 무더기로 뿌리를 박고 산다. 바위손은 바위틈에 붙어 자라 그 분류가 패류인지 해조류인지 모호하다. 학자들은 이 생물을 절지동물로 완흉목 거북손과의 만각류로 분류하고 있다.
보찰은 썰물이 되어 몸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딱딱한 손톱처럼 생긴 앞쪽을 굳게 닫는다. 그러다가 다시 물에 잠기면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는데, 고사리 잎 모양의 털손으로 지나다니는 플랑크톤을 쓸듯이 잡아먹는다.
학자들은 보찰이 먹을 만한 크기로 한 알이 자라기까지는 60~7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한 알이 자라기까지 세월이란, 산에 있는 소나무로 따지면 솔씨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는 시간이다. 그만큼 보찰은 번식과 성장이 느리다. 그런 보찰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독도에서도 어느새 개체수가 눈에 띌 만큼 줄었다. 이러다 몇 년 이내 독도에서도 보찰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독도에서 건강식으로 보찰만을 찾을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이라고 했다. 독도에는 차라리 귀하다는 해삼이 흔하게 난다. 그것도 흑삼이 아니라 벌건 홍삼이다. 독도 앞바다 물속에서는 홍삼보다 흑삼이 더 귀하다고 할 정도. 홍삼은 흑삼에 비해 맛과 향이 월등하고 건강식으로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도 홍삼은 웬만하면 아이들 팔뚝만큼 크다. 한 마리면 한 사람 물횟거리 한 대접은 넉넉하다. 이곳 홍삼은 근해의 홍삼에 비해 딱딱한 것이 흠이다.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기 때문에 육질이 질기다. 그래서 독도 홍삼을 먹을 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먹는다. 데친 홍삼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날것보다 향미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홍삼은 계절로는 겨울철 것이 제맛이라지만 4월에도 맛이 깊고 속도 차 있다. 잡히는 양도 넉넉해서 ㎏당 2만5천원 정도면 전국 어디서나 택배로 받아 맛볼 수 있다. 바다도 점차 자원이 고갈되어간다고 아우성이다. 오징어가 줄고, 꽁치가 드물다고 한다. 이미 인간의 주체 못할 욕망은 수많은 어족을 멸절시키고 어장을 황폐화시켰다.
인류가 돌도끼를 만드는 재주를 부린 이후, 인간 이외 '숨탄것'(동물)들에게는 횡액이자 근심거리였으니 황폐한 것이 딱히 바다뿐이겠는가…. 독도에 자연사박물관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설마 멸종한 '독도 보찰'을 시험관에 넣어 후세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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