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대한민국 대표습지 맞나요?" 23일 오후 기자가 찾은 대구 달서구 대천동 금호강 유역 달성습지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쓰레기더미가 곳곳에서 산을 이루고 공공연한 불법 경작으로 새들이 쉴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흑두루미 월동지라는 명성이 무색했다. 22일 발생한 화재로 시커멓게 타버린 갈대밭은 상처뿐인 습지 생태계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곳곳이 쓰레기 무덤=지난해부터 환경감시단으로 상주하고 있는 대경습지생태학교 석윤복 습지생태교육연구회장과 함께 이날 달성습지 일대를 돌아봤다. 둑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나타났다. 누군가 내다버린 온갖 잡동사니와 화재로 타버린 갈대밭은 참담했다.
개방형 습지와 가까운 숲으로 향했다. 부서진 오토바이가 동물 사체처럼 누워있었고, 수풀 속에는 고기잡이용 뗏목이 묻혀 있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들어가자 또 다른 쓰레기 동산이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이 범람하면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쌓이고, 그 위에 흙과 풀이 덮이면서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층층이 쌓여 있었다. 스티로폼과 신발, 부탄가스통, 플라스틱통 등 온갖 쓰레기가 예전의 서울 '난지도'를 방불케 했다.
고령군 다산면에서 강정유원지와 달성군 화원읍 방향으로 달성습지를 휘돌아가는 고압전력선도 문제로 꼽혔다. 새들의 비행 진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 한국전력에서 송전탑을 세울 당시 환경단체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습지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들의 방문도 줄었다. 석 연구회장은 "지난해까지 흑두루미가 3번 들어왔다가 떠났고 올해는 아예 오지 않았다. 재두루미 30마리가 잠시 들렀던 게 전부"라고 했다.
◆공공연한 불법 경작=달성습지 일대를 차지한 불법 경작은 놀라울 정도였다. 습지보호구역뿐만 아니라 새들의 서식처까지 침범해 불법 경작이 판을 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나무를 키우는 농원. 습지보호구역인데도 어린 느티나무에 농약을 뿌리는 광경이 목격됐다. 5분 정도 습지로 걸어들어가자 까마득히 보리밭이 펼쳐졌다. 개방형 습지 규모의 절반에 이르는 6만6천여㎡(2만여평)에서 대규모 농사를 짓고 있었다. 보리밭 옆으로 농기계가 드나든 흔적도 있었다. "밤에 몰래 와서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면서 농사를 지어요. 벌써 몇년째 농사를 짓는데 고발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죠." 습지보호구역 내에서 농사를 짓다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수익이 5천만~1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습지보호구역을 벗어나 달성군 화원동산 건너편으로 가자 수천평의 양파밭과 감자밭이 나타났다. 물론 불법이다. 국가하천변에는 경작을 할 수 없다. 강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감자밭은 흑두루미 서식처인 모래톱과 인접해 있었다. 밭 주변에는 쓰고 버린 농약포장지와 농약병, 비료포대 등 쓰레기가 즐비했다. 심지어 농사를 짓다 버린 비닐 쓰레기들이 무더기로 엉켜 썩어가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이들 불법 경작에 대해 낙동강환경유역청에 고발 조치만 한 뒤 방관하고 있다. 사유지가 일부 섞여 있어 강제 철거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쓰레기의 경우 자연보호협의회 등 민간 환경단체들과 함께 수거 작업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
대구시 관계자는 "습지구역 내 보리밭은 고발을 했고 하천변 불법 경작지는 6월까지 수확을 끝내는 대로 폐쇄하기로 했다"며 "4대 강 정비사업이 실시되면 하천변 사유지를 매입하기 때문에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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