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도(雄道) 경북에는 각종 특산물이 많다. 대한민국 16개 광역지자체 중 가장 넓다 보니 각종 농산물이 많이 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농산물을 전국에 알리고 판매가 촉진되도록 홍보하는 것은 쉽잖다. 그래서 특산물 홍보의 꽃, 각종 아가씨(아줌마)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고추, 참외, 대추, 딸기, 포도, 사과, 복숭아 등 각 시·군마다 다양한 특산물을 대표한 미인 홍보대사인 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녀 사절단 '미스 코리아', 자동차의 이미지와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레이싱 모델', 8등신 미녀들이 옷맵시를 자랑하는 '패션모델' 등이 현대적 이미지의 미녀 마케팅. 반면 특산물 아가씨들은 이들 못지 않은 미모에 친절함과 구수한 맛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한국적인 정서가 밴 미녀들이다. 이들은 '정(情)' 마케팅 개념이다.
특산물 아가씨들은 서울 아가씨들처럼 새침데기들이 별로 없다. 꾸미거나 가식적인 모습보다는 '아이고, 실수했뿐네', '저도 잘 몰라예' 등 있는 그대로 다가선다. '고향 사랑'이라는 특별한 무장을 한 특산물 아가씨 3명을 16~18일 매일신문사 주최로 열린 행정정보박람회에서 만났다. 순수한 매력의 그녀들에게 빠져보자.
◆고추·대추 아가씨, '다영, 지은'
'미인이라 다가가기 힘들 것이란 편견은 버려.' 아가씨지만 이렇게 정겨울 수 있다. 16일 이들을 만난 첫느낌이다. 이들은 친절뿐 아니라 예의바름과 인내심으로 무장한 1등 신부감이었다.
3년 전인 2006년 제13회 영양군 고추아가씨 선발대회에서 진선미에 이은 '달꼬미'에 선발된 영양 토박이 윤다영(23)씨. 통통한 고추 같은 윤씨는 건강미인이자 성격 좋은 아가씨.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참고, 집적거리는 사람이 와도 짜증 섞인 얼굴을 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속에 '친절'이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는다.
대구미래대 뷰티과를 졸업하고 고추아가씨가 된 윤씨는 영양 산나물축제, 수비 반딧불이 축제, 서울 HOT 페스티벌, 부산, 경기도 등 각종 축제장에 빠지지 않고 나선다. 고추에 대한 지식도 폭넓게 쌓아 이제 누가 물어도 당당하다. 처음엔 짓궂은 아저씨들이 '이거 중국산 아이가, 맞네'하면 위축돼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영양 고추는 중국 고추와 이렇게 달라요'하고 딱 부러지게 얘기한다.
윤씨는 "영양군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당당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며 "가끔 행사장에서 어머니 친구나 동네 어른들을 만나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웃었다.
대추아가씨 고지은(24)씨는 잘 익은 대추처럼 복스럽다. 지난해 10월 제2회 경산 대추아가씨 '선'에 선발돼 불과 6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활동은 경북의 여느 특산물 아가씨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벌써 공중파 TV를 2번이나 탔다. 지난해 말에는 '6시 내고향'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그맨 이봉원과 경산시장의 장바구니 체험때 함께해 특산물인 대추 등에 대해 설명을 했다. 지난 3월 초에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서울-대전-대구-부산'을 맛깔나게 불러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고씨는 "제가 경산여중·고를 나온데다 어머니 친구분의 권유도 있고 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회에 나섰는데, 선에 선발됐다"며 "막상 대추아가씨가 되고 나니 적성에 잘 맞아 즐겁게 하고 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등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밖에서 학업이나 실내 인테리어 등 다른 일을 하다보니 일이 겹치게 되면 많이 힘들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50세 참외 아줌마, '보선'
아가씨만 있을쏘냐. 성주군 특산물 홍보대사는 지천명의 나이를 자랑하는 김보선(50)씨. 김씨는 지난해 성주 참외아줌마 '진'에 선발돼 구수한 맛으로 참외 알리기 최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김씨는 17일 행정정보박람회에서도 원두막 형태의 부스를 차린 성주군 홍보관에서 하루 종일 참외를 깎았다. 부스를 찾는 이들에게 꿀맛같은 참외을 선사하고 있었다. 참외 깎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때는 아가씨보다 아줌마가 훨씬 낫다. 일도 척척, 정도 넘쳐 누구나 편안하게 부스를 찾는다.
지난해 4월 성주 참외아줌마에 선발된 김씨는 20년 가까이 참외농사를 지어온 '진짜 참외아줌마'. 지난 1년간 김씨는 매달 3, 4번은 참외 홍보를 위해 행사장을 찾을 정도로 외출이 잦았지만, 푸념은커녕 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참외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 향이나 당도를 소개하는 게 훨씬 전달력이 있지요"라고 말한다.
김씨가 참외아줌마 선발대회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남편의 만류에도 참외를 사랑하는 마음과 주변의 응원 때문에 나서게 됐다. 김씨는 "결국 남편도 1위가 됐다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특히 참외아줌마는 선발방식도 독특하다. 여느 아가씨 선발대회와 달리 밭에서 일을 하다가 리허설에도 참석하는 것. 지난 대회에 참석한 아줌마 19명 모두 그래야했다. 그 때문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운동복을 입고 가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허설을 마치면 곧바로 밭으로 가서 일을 해야하기 때문.
성주군이 10년 넘게 참외아가씨를 선발하다 아줌마를 뽑기 시작한 건 3년째. 성주군청 이길영 공보담당은 "참외 경작 2년 이상 경력의 아줌마를 대상으로 뽑다보니 현장경험이 묻어난다"며 "적극적인 홍보에는 아줌마가 딱"이라고 말했다.
◆특산물 홍보대사 '이렇다'
경북도내 각 특산물 홍보대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미 소개한 고추·대추·참외 이외에 영천·김천 포도, 영덕 복사꽃, 안동 한우아가씨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상주의 곶감아가씨는 사라진 지 오래. 마늘아가씨는 의성이 아니라 충북 단양에, 사과아가씨도 대구나 청송이 아닌 충남 예산에 있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대회는 영양군 '고추아가씨'. 사업비만 1억원 가까이 들었다. 가장 많은 아가씨를 배출하는 대회는 충북 단양군의 '마늘아가씨' 대회로 10명이 선발됐다.
당선 상금은 대체로 진이 200만~300만원, 선·미와 기타 상들은 100만~200만원 정도. 대체로 2년에 한번씩 3~5명 정도를 선발하며, 일단 선발하고 나면 특산물에 대한 이미지 교육, 자질 교육 등 1박2일 또는 2박3일의 교육과정도 밟게 된다. 이후 따로 정기적인 급여 같은 것은 없으며, 행사 때마다 일당 10만~15만원 정도를 받는다. 매월 얼마씩이라도 품위 유지비를 받았으면 하는 것은 아가씨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들은 물론 행사 참여 전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는 데 5만원, 한복 다리는 데 1만원이 드니 실질적으로는 '남는 게 없는 장사'라고 불평한다.
프러포즈를 하거나 데이트 신청을 하는 사람은 있을까. '물론 있다'. 행사장에서 전화번호를 주고 가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들 홍보대사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당시에는 친절하게 받지만, 모두 '퇴짜'다. 또 대부분 미모가 받쳐주다보니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가 대다수.
아가씨들의 모임도 많다. 봉사도 한다. 고추아가씨는 지난해가 14회째로, 1회 대회 진에 선발된 맏언니(43세)가 회장을 맏으며 1년에 1번씩 모여 요양원, 시설 등에서 노인들과 불우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터라 연예계로 진출한 아가씨도 있다. 참외아줌마도 3년째 뽑다보니 미스코리아들의 모임인 '녹원회'처럼 '참모'(참외아줌마 출신 모임)도 있다. 매년 30대, 40대 각 진선미, 포토제닉상, 인기상까지 총 10명씩 30명 가까이 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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