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경야독' 청소년, '자원봉사' 교사 어디 없나요

▲ 대구혜인학교 교실 안에 덩그러니 놓인 출석부. 출석률 50%만 넘겨도 출석 우수자로 불릴 만큼 학생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 대구혜인학교 교실 안에 덩그러니 놓인 출석부. 출석률 50%만 넘겨도 출석 우수자로 불릴 만큼 학생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 검정고시를 마친 다음 날인 13일 오후 대구혜인학교 교무실에는 2명의 교사가 나와 있었다. 행여 걸려올지도 모르는 학생이나 교사 모집 문의전화를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 검정고시를 마친 다음 날인 13일 오후 대구혜인학교 교무실에는 2명의 교사가 나와 있었다. 행여 걸려올지도 모르는 학생이나 교사 모집 문의전화를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창으로 달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는 덜 여문 달은 남산 위에 해맑게 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돋아나고 있는 새 잎사귀들이 달빛을 흠뻑 받아 낮에보다 더 고왔다. 그 그림자가 합숙소의 유리창에 여리게 어려 있었다.

"오늘 공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하세요."

이상재는 책을 덮으며 스무여 명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넝마주이인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피곤에 절어 있었다.

"예, 선생님, 앞으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들 하는데 상업학교하고 공업학교 중에서 어느 쪽으로 진학하는 게 더 좋습니까?"

(중략)

"선생님,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다함께 목소리 맞추어 인사를 했다. 그들은 대학생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 아무런 보수도 없이 애쓴다는 것을 잘 알아 예의를 깍듯하게 갖추었다.'

1960년대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쓰여진, 조정래의 소설 '한강'의 일부다. 낮에는 넝마를 줍는 넝마주이, 근로재건단원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대학생인 이상재가 밤에 수업을 하는 장면이 드러나 있다. 특히 교사인 이상재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었지만, 진로 상담은 물론 예를 갖추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60년대와 40여년의 시간적 차이가 나는 지금도 현실은 조금 다른 형태지만 야학이 있다. 전국적으로는 140곳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대구에 있는 야간학교(장애인 특수야간학교, 한글교실 제외)는 4곳. 특히 1980년대까지 30곳 안팎이었던 야학은 2000년 초반 10곳 가까이로 줄었다가 최근에는 4곳으로 줄어든 것이다.

30년간 야학으로 운영되던 신일나눔학교가 2003년 8월 사라졌다. 20년간 범어성당 내에서 운영되던 화선학교도 지난해 2월 사라졌다. 공간적·재정적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배움의 대상인 청소년을 찾기 힘들며, 교사로 오래 있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야학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부족해

13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의 한 빌딩 지하에 있는 혜인학교. 오후 8시였지만 교사 2명이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전날인 12일 검정고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정고시를 마치면 야학은 방학에 들어간다. 방학은 학생·교사 모집 기간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교 입구인 지하문으로 들어서자마자 '학생 수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공부하려는 분들 많이 데리고 오세요'라는 내용의 알림 문구가 붙어있었다. 학생 수급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무실로 들어서자 화이트보드에는 전날 치러진 검정고시장인 매호중, 고산중, 노변중으로 응원 갈 교사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재근(26) 교사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동안 가르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것이기에 야학교사들에게도 검정고시는 중요 행사"라며 "고교생들이 수능시험을 칠 때 고교 교사들이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전체 교사의 수는 15명. 1주일에 1, 2번 출근하는 다소 자유로운 출퇴근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하루 3과목씩 수업이 진행되면 15명은 부족한 숫자. 다행히 인근에 계명대가 있지만, 최근 몇 년 새 교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사 확보 문제는 다른 곳도 사정이 비슷했다. 경북대 인근의 동구열린학교, 대구교대 인근의 새얼학교도 역시 15명 안팎의 교사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간에 나가는 걸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교사들이 중간에 나가면 막막합니다. 최소 6개월은 해달라고 하긴 하지만 개인 사정을 들면서 나가겠다고 하면 막을 수 없거든요. 한 학기를 마치면 교사 수급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수시로 교사를 받고 있습니다. 교사 1명이 2과목 맡는 경우는 더러 있지요. 1년 이상 된 교사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니까요."

현재 대구에 남아있는 야간학교는 동구열린학교, 삼일야간학교, 새얼학교, 혜인학교 등 4곳. 이곳 모두 교사 확보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난제였다. 이 때문에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적어도 1년간은 나와야 한다는 조건을 완화, 6개월로 줄여보기도 했다. 과거 1주일에 5일 출근하던 것을 바꾼 지도 오래다. 불경기와 취업난 속에서 그런 조건으로 야학교사 생활을 지속한다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 현재도 1주일에 한번 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머지 한번은 당직개념으로 학교에 들르는 게 전부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검정고시가 있는 4월이 지나면 무더기로 학교를 떠난다. 그래서 각 대학 캠퍼스에는 '야학교사 모집'이라는 스티커가 춘삼월부터 눈에 많이 띄는 것.

?학생 적지만 아직 사라져선 안 돼

중요 구성원인 학생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학생 수가 많지 않다는 건 공통적인 부분이었지만 특히 학생 중 청소년은 소수였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6년 대구에 있던 야간학교는 모두 5곳. 전체 학생 수는 153명. 이 중 20대 미만 청소년의 수는 25명에 불과했다. 오후 7시 전후로 수업을 시작해 10시 전후로 수업을 마치는 구조이긴 하지만, 과거 야학처럼 청소년 중심의 주경야독식 야학은 아닌 셈이다. 이 중 학생수가 가장 많은 혜인학교의 경우 지난해 전체 학생 40명 중 20대 미만은 단 4명이었으며 학생들의 평균연령은 40.1세였다. 50대 이상 학생이 23명으로 전체 절반 이상이었다. 학생들의 출석도 꾸준한 건 아니었다. 출석률 50%면 괜찮은 편.

하지만 여전히 야학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교사 수급이 어려운 것은 취업난과 경기불황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에서 오는 것이지, 야학에 대한 무관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40, 50대의 늦깎이 공부를 원하는 이들을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곳도 야학밖에 없다는 것.

우상수 새얼학교 교감은 "밤에 수업을 하는데도 출석률이 50%밖에 안 된다는 건 야학을 찾는 이들이 밤 수업에 못나올 정도로 낮에 회사나 공장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야학 아닌 다른 곳에서 배우려면 돈이 들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야학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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