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란색의 치명적 '票心 유혹'?…선거와 색깔

대구·경북 선거판 벽보는 지금 푸른 물결, 왜 그럴까?

▲ 경주시 안강읍에 붙어있는 경북도교육감, 국회의원, 경주시의원 후보자들의 선거 포스터. 정당 공천이 없는 도교육감 후보와 한나라당 공천이 없었던 무소속 경주시의원 후보들의 포스터 색깔이 파란색 일색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경주시 안강읍에 붙어있는 경북도교육감, 국회의원, 경주시의원 후보자들의 선거 포스터. 정당 공천이 없는 도교육감 후보와 한나라당 공천이 없었던 무소속 경주시의원 후보들의 포스터 색깔이 파란색 일색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4·29 재·보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역에서도 경상북도 교육감 보궐선거, 경주시 국회의원 재선거, 경주시의원 보궐선거가 몰려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들여다보니 공약이나 선거운동 방식, 후보 경력 외에도 색깔이 눈길을 모았다. 비슷한 색깔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이 한창인 23일 경주시내 곳곳에 모습을 보인 플래카드와 선거운동원들의 옷차림엔 주로 파란색이 들어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나타나는 색이기도 한 파란색이 그 당 후보에게 덧칠되는 것이 이상할 법도 없지만 경북도교육감 후보도, 경주시의원 후보도 모두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 특히 경주의 선거는 '스머프 축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란색 일색이다.

보름이 채 안 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자들이 만날 수 있는 유권자의 수는 한계가 있다. 자연스레 일일이 유권자를 만나지 못하는 후보자로서는 선거 포스터와 유권자의 집으로 배달되는 공보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색깔이 후보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이미지가 곧 투표의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색깔이다. 특히 정당공천이 없는 이번 경북도교육감 보궐선거의 경우 세 후보 모두 파란색을 선거 포스터로 사용했다. 경주시의원 마선거구(안강읍·강동면) 보궐선거도 한나라당은 공천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공천을 받아 나선 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세 후보 모두 파란색으로 도배를 했다. 무관심 속 혼조세에서는 단연 이미지가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허위사실이나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만 없으면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후보자가 스스로 공보에 들어갈 내용이나 포스터를 디자인할 수 있어 유독 파란색 계통의 디자인이 눈에 띄는 것. 하지만 왜 하필 파란색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는 인지도가 낮은 후보의 경우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이름을 들어야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 선거판의 통설인 것과 같은 맥락. 일종의 '묻어가기 전략'이라는 것.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를 분석해보니

지난 2006년 대구시장 후보, 대구시의원 후보와 구청장·군수 후보들이 공보 표지에 사용한 색깔을 분석해봤다. 총 후보는 47명, 이 중 34명이 파란색 바탕을 공보 전면에 내세웠다.

총선에서도 이 같은 '파란색 지향성'이 나타났을까. 결과는 상반됐다.

17대 총선에 출마한 58명 중 14명만이 파란색을 바탕색으로 사용했다. 특히 '한나라당=파란색'이라는 등식을 깨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이들 중 대다수는 하얀색 바탕을 공보에 사용했다.

17대 총선 직전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천막으로 당사를 옮기는 등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힘썼고, 열린우리당의 노란색 돌풍이 감지되던 때였다. 무엇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란색, 한나라당은 파란색, 민주노동당은 주황색, 구민주당이 녹색을 각각 당의 상징색으로 채택해 정당별로 색채 대비가 선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한나라당의 싹쓸이. 당시 대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곽성문, 박창달, 주성영, 강재섭, 이명규, 안택수, 주호영, 이한구, 김석준, 박종근, 이해봉, 박근혜 등 12명이었다. 이 중 강재섭 의원 등 7명은 하얀색을 바탕색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4년 뒤 18대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한 43명의 후보 중 파란색 바탕을 쓴 후보는 24명이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등 보수정당들이 하나같이 파란색을 내세워 선거를 치른 데다 무소속 출마자들까지 파란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명목상 한나라당 싹쓸이는 없었다. 홍사덕 의원을 비롯해 친박연대에서 4명이 당선됐다. 하지만 홍사덕 의원만 하얀색을 바탕으로 사용했을 뿐 박종근, 이해봉, 조원진 의원은 파란색을 사용했다.

반면 대통령 선거의 경우 색깔 차이가 확연했다. 지난 2007년 대선을 보면 진하기의 정도만 다를 뿐 갖가지 색깔이 등장했다. 옅은 보라색도 있었다.

◆왜 파란색인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색깔로 오방색이 있다.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 다섯가지의 오방색 중 우리나라,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청색에 집착하고 있다.

한상만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파란색의 경우 심리학에서도 신뢰감을 주는 색깔로 인정되고 있다"며 "주요 기업의 CI나 경찰차가 파란색을 사용하는 것도 신뢰감을 주는 색깔이 청색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방색 중 나머지 네 가지 색의 경우 특정 이슈를 강조하고자 할 때 많이 쓰인다. 오방색은 이웃나라 일본의 선거 포스터에서는 골고루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흰색은 순수·청렴·결백을 나타내는 의도로 쓰이고, 붉은색은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에도 들어가는 색으로 이는 일본 국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색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검정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노란색은 금색과 비슷해 귀하게 여겨지지만 흙빛을 상징하기도 해 흙을 캐 사는 민초를 뜻하기도 한다.

그 외 통합민주당의 로고에 쓰인 녹색은 어머니의 색, 자연의 색으로 친근감을 나타내 서민의 색깔로도 알려져 있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지방선거 때까지 썼던 주황색은 주목도가 상당히 높은 색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각 개인별로 배경지식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색에 대해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게 일각의 지적이다.

황현택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시각에는 고정된 것이 없으며 개별적 경험이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며 "다만 학습된 결과에 따라서 개별적 특성이 줄고 보편성이 나타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표방한 파란색이 결국 학습효과로 나타나 보수를 상징하는 색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이 파란색인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신뢰를 주는 색으로 알려진 파란색의 시작은 민주정의당 때부터. 실제 한국정당 계보를 살펴보면 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의 색깔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파란색 바탕을 사용하기 시작한 민주정의당 이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으로 이어진 것.

◆다른 나라의 선거 포스터는

다른 나라의 선거 포스터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웃 일본의 경우 인물을 중심에 놓고 간단한 구호나 약력을 나열하는 등 우리와 거의 비슷한 구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붉은색을 선호한다. 이는 일본의 상징인 태양의 붉은 빛을 나타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선거 때 쓰인 선거 포스터를 보면 포스터 배경이 제각각이다. 사르코지 현 대통령의 포스터에는 '우리가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문구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후보의 사진이 유난히 강조될 뿐이다. 바로 옆 선거 포스터인 노동자투쟁당 후보 라기예의 공약 나열과 대비되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장 선거 홍보판은 단조로워서 이채롭다. 여성 후보는 단 한명도 없고 후보자의 사진 밑에 후보자와 관련한 간략한 설명이 들어있는 게 전부다. 인근 알제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흰색 바탕을 사용해 후보자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 반면 쿠웨이트는 이슬람 국가지만 화려한 색채가 많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도 간간이 눈에 띄고, 압바스조 이슬람 제국(750∼1258)의 상징색인 검정색을 바탕으로 쓴 것도 눈에 띈다.

미국은 대선후보가 주로 둘이기 때문에 예외에 속한다. 정당의 상징색도 없다. 다만 TV 선거방송이나 신문의 선거기사에는 공화당을 붉은색, 민주당을 파란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 당의 상징색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특정 색깔을 통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원색 중심의 피켓을 들고 지지 후보를 알리고 있다. 다당제가 아닌 양당제이기 때문에 후보가 난립하지 않아 인지도 면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 주로 사용되는 색은 흰색, 청색, 붉은색으로 이들은 주로 구호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에 나선다.

◆색깔이 왜 중요한가

경북도교육감 기호 선정이 있던 날 '가나다' 순에 의한 기호 배정에 각 선거 캠프의 희비가 교차했다. 정당 공천이 없는 선거인데다 전통적으로 여당이 기호 1번을 써왔기 때문. 하지만 기호 1번은 보수여당의 이미지에서 약간은 희석됐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기호 1번은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은 후보였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민주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기호 1번을 썼다.

인지심리학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후보를 특징지을 때 가장 먼저 기호를 봐왔지만,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이후부터는 색깔의 기능이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파란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유권자의 심리를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것. 유권자의 심리상 주류(Main Stream)에 편승해 사표를 만들기 싫어하는 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구경북의 정서상 프랜차이즈 야구 구단인 삼성라이온즈의 파란색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게 그 이유.

지금처럼 대부분의 후보들이 파란색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정책이나 공약 중심으로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윤형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거 포스터를 보고 유권자가 기억하는 순서는 대체로 기호, 색깔, 얼굴, 구호순"이라며 "하지만 지금처럼 색깔마저 같아지면 정책에 유권자가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권자가 정책이나 공약을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투자할지가 관건. 이 교수는 "공약이나 정책에서도 변별력이 없다면 유권자가 골치 아플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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