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KT와 38년 외길 인연…박부권 신임 KT문화재단 이사장

IT강국 걸맞은 IT문화 업그레이드

"열심히 노력했고 운도 따랐다."

박부권(58) KT문화재단 이사장은 평생을 KT와 함께해 온 KT맨이다. 9급 공무원으로 KT의 전신인 전화국에서 시작, KT 전무와 KT링커스사장을 지낸 데 이어 올 2월 KT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KT와의 인연을 38년째 이어가고 있다.

KT 문화재단을 맡게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KT홍보실에서 세 차례 일한 이력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홍보부장과 홍보실장, 홍보담당 전무를 지냈다.

KT문화재단은 건강한 정보통신 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 및 공익광고와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공익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IT 강국이란 명성에 걸맞게 IT 문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하겠다"며 "IT 역기능은 방지하고, 건전한 문화를 적극 후원함으로써 IT를 문화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KT링커스 사장을 끝으로 KT를 떠난 박 이사장은 지난해 말 KT사장 공모에 응했다. 40여명이나 응모한 경쟁에 나선 것은 그만큼 KT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누구보다 KT를 잘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세계적인 통신 기업인 KT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KT를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장관이라는 '거물'이 뒤늦게 등장하면서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박 이사장은 "KT링커스를 이끌던 시절이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꼽는다. 공중전화 관리 사업을 위해 출범한 KT링커스는 박 이사장이 부임하기 전에 KT텔레캅이라는 브랜드로 보안 사업도 하고 있었다. 그는 보안 사업이 떠오르는 '블루오션'(blue ocean)이라고 보고 KT텔레캅에 집중했다. 그가 맡은 지 1년여 만에 KT텔레캅은 매출액에서 공중전화 사업 부문을 넘겼다. 덕분에 그는 2005년 산업자원부장관이 주는 '최고경영자 CEO상'을 받았다.

호사다마일까. KT에서는 KT텔레캅을 KT링커스와 분리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노조측이 반발하는 등 갈등이 빚어지자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다.

그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정을 바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정규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박 이사장이 '세계적인 통신기업'인 KT의 사장을 꿈꿨던 바탕에는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고향인 울진군 평해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던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고교에 진학하는 대신 재건학교(야학)에 다니면서 교사로서 또래 학생들을 가르쳤고, 후포와 평해 지역 고교생 40여명을 모아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가르치던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지만 시범 강의를 듣고 20여명이 과외비를 내면서 몰려들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 그는 공무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은 직장을 다니면서 방송통신대(법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남들처럼 제대로 된 학연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는 승진이 빨랐다. 1982년 KT의 전신인 통신공사가 출범하자 그는 연수원교수(과장급)로 변신하기도 했다. 남에게 가르치는 남다른 수완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자주 쓴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똑같이 대학을 나와서 직장에 들어갔다고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밥까지 떠먹여 주지는 않습니다. 남들보다 30분 더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남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남이 시키는 일만 해서도 안되고, 한 발 더 앞서 나가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호는 만청(晩靑). '늦게라도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뜻으로 얼마전 지인이 지어줬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