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자녀를 격려하자

단비라도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날 아침, 출근 후 차를 세우고 서둘러 환자를 보며 긴 하루를 보냈다.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이런저런 일들을 정리하느라 주위가 깜깜해진 뒤 늦은 퇴근을 하려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니 내 차 주위가 대낮같이 환하였다. '아니 ! 웬일이지?' 하면서 살펴보니 전조등에 안개등까지 켜진 채였다. 아침에 미등을 켜고 운행한 뒤 끈다는 것을 반대방향으로 돌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헉, 오늘 시동은 글렀군! 서비스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차에 올라 시동을 거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척 걸리는 것이 아닌가! '흠! 차도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끝까지 안간힘을 쓰며 버텨 주었군! 고마운 녀석!'하며 차안에 혼자서 흐뭇한 마음으로 앉아서 한참을 고마워했다.

그 순간 잠깐 동안의 미국 생활 시절, 적응하느라 애쓰던 아이들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 주셨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완벽해 보이던 그 선생님의 학부모 상담 시간에 아이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은 후 질문은 없느냐는 선생님의 상투적인 물음에 나는 '혹시 선생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상담하러 온 이유야 들어서는 부모의 얼굴을 척 보면 알 것이라 생각해 그냥 웬일인지 선생님이 특별해 보여서 물어보았더니 배꼽 잡는 얘기를 해 주셨다.

초보교사 시절. 처음으로 담임을 맡아 허둥대며 출근해 반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보려고 열정적으로 칠판을 두드리며 강조를 하려는 찰나 치마가 훌러덩 벗겨졌단다. 지퍼 올린 후 훅을 걸어야 하는 것을 깜빡했단다. 아이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지만 이후 아이들이 선생님께 확 다가오더라는 얘기를 하며 얼굴 빨개지는 (첫 만남의 어색함을 깨는) '아이스 브레이킹'이었지만 잊지 못할 교단생활의 에피소드라면서 '이건 비밀인데 얘기해주었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스르르 제어 장치가 풀려 느슨해져 그만 웃지 못할 실수도 하게 되나 보다. 어른이 이럴진대 긴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한창 호기심 많고 꿈 많은 학창시절의 아이들은 오죽하랴.

입시결과 발표가 난 후 '뉘 집 아이는 어느 학교에 갔다더라' '누구는 완벽하게 갖추어진 여러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어디도 못 들어갔다더라' '걔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열심히 놀았는데도 그곳에서 받아주니 참 운이 좋은 모양이다'라고 하는 얘기도 간혹 들린다. 특히 열심히 한다고 소문났던 아이들,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만의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실패한 것처럼 얘기하면 아이들은 마음의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일전에 읽은 책에서 작가이며 유명한 연사인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라고 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 스스로 방황도 해보고 여러 가지 나름 선택을 한 후 자기인생의 방향을 잡아서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주위에서는 진심으로 격려하고 지켜봐 주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정명희 (민족사관고 2년 송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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