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 하는 놈들만 보면 손이 부르르 떨린다 아입니꺼."
꽃집 아저씨 하태정(49·달서구 성당2동)씨는 밤이 되면 순찰복으로 갈아입고 '동네 파수꾼'으로 변신한다. 20년간 해오던 일이다. 자율방범대 순찰을 도느라 일주일에 나흘은 자정을 넘겨야 집에 들어간다. 지금껏 잡아 경찰서에 넘긴 범인들만 200명은 족히 넘는다. 본업을 '형사'로 바꿔도 될 정도다.
◆명포(名捕) 꽃집 아저씨
하씨가 자율방범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9년. 학교 밀집지역인 성당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하씨는 학생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율방범대 조직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된 올빼미 활동이 20년을 넘어섰고 방범대장을 맡은 지도 벌써 15년째다.
그의 안목은 직업 형사 못지않다.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는 일단 열쇠가 꽂혀있는지 확인하고 키박스가 뜯어져 있는지 여부도 확인한다. 오랜 방범대원 활동으로 굳어진 습관이다. 그는 "10대들이 열쇠 없이 오토바이를 몰고 갈 때는 어김없이 훔친 것"이라며, "지금까지 오토바이 절도범만 수십 명을 붙잡았다"고 했다.
꽃배달을 가면서도 그의 눈은 좌우로 번뜩인다. 꽃집 사무실에는 범인 검거로 받은 표창장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운동을 했다거나 무술 특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좋은 체구를 가졌지만 젊은 시절 합기도를 1년 남짓 배운 것이 전부다.
하씨는 "자율방범대원은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범인을 잡으려다가 부상이라도 입히면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거의 몸으로 때운다"며 "덕분에 나쁜 놈보다 내가 더 많이 다쳤다"고 했다. 지난주에도 그는 미용실 절도범을 잡다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다. "꽃배달을 가는 도중 미용실 앞에서 낯선 남자가 서성대는 것을 봤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 남자가 미용실에서 가방 하나를 몸속에 감추고 뛰어나오는 것을 봤어요. 순간 '도둑이다'라는 생각에 오토바이를 팽개쳐두고 뛰기 시작해 20여 분의 추격과 몸싸움 끝에 두류산 인근에서 범인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지요." 그는 "추격 도중 3번이나 차량과 부딪쳐 죽을 뻔한 고비도 있었지만 내 몸 상하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덕분에 아내와는 늘 말다툼을 한다.
◆보복당하고 욕먹고, 고생도 많아요
범인만 보면 겁없이 덤벼들지만 한때 자율방범대 활동을 그만둔 적도 있다. 1993년 10대 오토바이 절도범 2명을 잡았는데 이튿날 범인 친구들이 밤늦게 귀가하는 그를 뒤따라와 둔기로 내려치고 보복을 했기 때문. 하씨는 "그 이후 겁이 나 2년 동안 방범대 활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아직도 목 뒷덜미에 15㎝가량 상처가 남아있다"고 했다.
밤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10대 선도활동을 벌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웃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하급생들의 돈을 뺏거나 물건을 훔치는 학생들을 붙잡아 경찰로 인계하면 "경찰도 아니면서 왜 내 자식을 잡아다 범죄자로 만드느냐?"고 악다구니를 쓰는 부모도 있다. 하씨는 "아직도 인사조차 안받는 동네 분도 있다"며 "하지만 상당수는 '덕분에 내 자식이 바른 길로 갈 수 있었다'며 뒤늦게 사과를 하기도 하고 '이젠 나쁜 짓 안 해요'라고 수줍게 인사하는 학생들도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씨는 "지금껏 방범대원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봉사를 하는 대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 상당수가 떠났지만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주민 일부는 여전히 방범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씨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학생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동네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