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선거가 아무리 싫더라도…

후보'제도 모두 마음에 안들어도 유권자 권리'의무 포기해선 안돼

얼마 전 가수 동방신기 팬카페에서 본 글이다. '얼짱' 멤버 김준수와 여성 팬이 나눈 대화 중 일부.

팬:준수 오빠! '대통령 선거' 반대말이 뭔지 아세요?

준수:음… 모르겠는데요.

팬:'대통령 앉은거'요!!!! 재밌죠?

준수:…네…(한참 뜸을 들인 후) 다른 사람 앞에서 하시면 안 돼요.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한 '썰렁유머'다. 신세대들은 말의 의미를 살짝 비틀거나 발음을 조금 바꾸는 식의 유머를 구사한다. 과장된 몸짓이나 적나라한 표현에 익숙한 '쉰'세대들은 듣고 나면 한참 생각한 후에야 쓴웃음을 짓는 게 보통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대 간의 간격을 느낄 때만큼 슬플 때도 없다.

오늘 치러지고 있는 교육감'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지켜보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선거'라는 민주주의 축제의 場(장)에서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것이 슬프다. 요즘 선거가 국민의 신성한 권리라기보다는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할 상황에 놓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 과잉과 피로증 때문이다. 대구시민 중에 시장 이름은 안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구·군 단체장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시의원, 구의원을 알고 있는 유권자는 열에 한 명도 채 되지 않는다. 기자도 지역구 시'구의원을 대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대통령, 국회의원,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은 물론이고 교육감까지 뽑아야 한다는 데 피곤함을 느끼는 이들이 한둘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지겨움이다. 만날 싸움질하는 정치판도 꼴보기 싫은데 '친이, 친박'이니 '진보, 보수'니 하는 선거판 다툼까지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다. 선거가 국민에게 희망은커녕 스트레스만 잔뜩 안겨준다.

경북도교육감 보궐선거만 해도 그렇다. 내년 6월 말까지 1년 2개월 잔여 임기를 수행하는 '땜질' 선거에 드는 선거관리비를 보면 기가 막힌다. 무려 179억 원이다.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는 후보 개인 선거비용(14억7천만 원)까지 합하면 2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렇게 효율성 없고 비경제적인 선거가 어디 있겠는가. 투표율도 바닥권을 헤맬 게 확실하다.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데도 20%안팎으로 점쳐진다.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붓는데도 유권자의 관심은 온데간데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만 하다 온 나라가 거덜날 것이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選擧亡國論(선거망국론)이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고, 아무나 뽑아 놔도 새로울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는 자포자기성 불신이 팽배하다.

심각한 문제다. 한국사회에 위기 경보가 울리고 있다. 선거가 필요 없다는 사고가 만연하면 역사적 反動(반동)을 부르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다. 아니면 미국처럼 하층 계급은 소외되고 특정 집단과 계층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몰아주고 몰표를 던지는 분위기로 바뀔 수도 있다.

선거제도 전반을 뜯어고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어쨌든 오늘 투표는 해야 한다. 선거가 아무리 신물 나고 몇몇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에 놀아나는 듯한 느낌이 싫더라도 유권자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부모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결국은 모시고 섬겨야 하는 이치와 같다. 민주주의라는 큰 배를 그냥 침몰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참고로 경북도교육감 선거를 뜯어 보면 재미있는 구석도 꽤 있다. 기자가 보기엔 3명의 후보 모두 나름의 특색이 있고 장단점도 많다. 정당 공천이 없는데도 한나라당 당원과 비슷한 차림새를 한 후보, 도덕적 흠결이 많은 듯한 후보, 선거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의 후보… 처음 직선으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현명한 판단을 하자. 투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기적을 낳지 않았던가.

박병선(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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