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동·백두를 가다] 청송백자 산증인 박갑순 할머니

일행은 부동면 신점리 '법수골' 가마터에서 청송백자의 산증인 박갑순(85) 할머니를 만났다. 거동이 불편해 인터뷰 내내 미안함이 따랐지만 500년 청송백자의 마지막 현장을 지켜본 분이다. 할머니는 23세에 여기에 왔으니 법수골 63년째 터줏대감이다.(사실은 가마터에 집이라곤 할머니댁이 유일했다)

할머니는 20대에 여기에 와 농사일을 하면서 백자 생산이 중단되기 전(1958년)까지 백자 만드는 일을 도왔다. 백자를 굽는 데 쓸 나무를 해 날랐고, 백자를 가마에 넣고 구운 백자를 다시 나르는 일이 할머니의 몫이었다. 백자를 사러온 등금쟁이들이 오면 밥도 했고, 막걸리도 건넸다고 한다. 등금쟁이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단지밥(일종의 휴대용 밥솥)이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백자가 가마터에 나오는 날(점날)이면 법수골이 들썩였는데 이젠 혼자 돌산(백자 원석을 캔 산)만 매일 바라다보는 일이 할머니의 일과가 됐다. "군에서 옛날 가마터를 다시 만디이 그릇이 다시 나오니껴." 할머니는 가마터에서 백자가 다시 나오길 믿고 있었다.

청송백자 최고의 기술자는 바로 사기장이다. 강병극 청송군 전략기획팀장은 "수년간 청송 사기장을 수소문했는데 현재 고만경, 임성용 씨 등 2명이 생존해 있다"며 "이들을 법수골 가마터에 모셔 청송백자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강 팀장으로부터 취재한 이들 사기장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든이 넘은 고옹은 1958년 가마가 사라질 때까지 법수골에서 청춘을 바쳤다. 사기점이 폐점된 후 농사일과 정미소 등에서 일했고, 다시 청송을 떠나 대구로 왔다. 고옹은 젊음을 바친 사기장 일이 그리워 지금도 대구의 집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고령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게 강 팀장의 전언이다.

여든의 임옹 역시 11세 때인 1940년부터 사기장 일을 했다고 한다. 범수, 웃화장, 질티 등 청송 내 사기장을 옮겨 다녔고, 50년대 이후 스테인리스 그릇이 나오면서 사기가 쇠퇴하자 서울 청량리 등지로 판로를 모색했지만 결국 현대 문명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임옹은 이후 강원도 태백의 광산에서 광부로 일을 했고, 지금은 진폐증을 앓아 태백의 한 병원에서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

강 팀장은 "청송백자의 기술을 갖고 있는 최후의 사기장이지만 지금의 삶은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청송백자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이들이 진정한 청송인이자 묵묵히 경북의 역사·문화를 반석 위에 올린 숨은 경북인이 아니겠는가. 이제 청송이 나서 이들을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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