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가 대세라지만 이런 막장 연극이 없다. 가난한 영화감독인 남편은 살림을 외면한 채 작품에만 골몰한다. 보다 못한 아내는 밤새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러 다닌다. 시동생은 은둔형 외톨이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삭막한 집 안에서 어느 날 아버지가 유서 한 통을 남기고 자살한다. 유서에는 '너무 놀라지 마라' 달랑 한 줄이 적혀 있다.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큰 아들은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계속하고, 아내는 노래방 일터로 출근하고, 시동생은 축 늘어진 아버지 시신 아래에서 찬밥을 먹는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와 배우는 어떤 사람들인가.
7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소극장 우전 무대에서 공연되는 창작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로 의기투합한 극작가 박근형과 배우 김은환, 극단 맥 씨어터 대표 윤정인씨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한 것 아니냐고 묻자, 박씨는 "사실 현실은 더 지독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연극이니까 근엄하고 올바른 것보다는 더 지독하고 어긋나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천재 연극연출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박근형은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히트시킨 우리 시대 젊은 작가다. 박씨는 "일그러진 가족에 대한 뻔뻔한 이야기지만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상한 얘기는 아니다"면서 "대구 연극인들의 열정적인 무대가 기대된다"고 했다.
큰 아들로 출연하는 김씨는 "박근형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렌다"고 했다. 그는 박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들춰냈다. "한 번은 배우들 연습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더니 '우리 막걸리나 마시러 가죠', 이래요. 그리고는 술자리를 벌여요. 서로 한참 얘기하다 보면 알게 돼요. 막걸리 마시자는 게 '그런 식으로 백날 연습해야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김씨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잘 풀어놓는 게 박씨의 장점이라고 했다. '아 이런 것이 사람이구나', '이런게 사는 거구나' 하는.
윤씨는 "얼마전 대덕문화전당에서 이 공연을 했을 때 관객 반응이 '이게 뭐야'하며 뜨악했다"면서 "하지만 이 공연은 사람에 대해 솔직하고 가식없는 박근형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윤씨 역시 박씨에 대한 작은 추억을 갖고 있다. "연습장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저도 한 입만 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소탈해서 깜짝 놀랐어요.(박씨는 자신을 '엉뚱하고 궁상을 즐기는 인간'이라며 말을 보탰다)"
창작 연극의 장기 공연이 드문 대구 연극계에 '너무 놀라지 마라'가 불러올 활기가 기다려진다. 그렇다고 너무 놀라지는 마시고.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7시 30분. 070-8226-5736, 1544-1555, 053)651-5028.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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