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붓다를 생각한다

붓다는 6년의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이의 깨달음의 실상이 무엇인지는 범부로서야 알 수 없지만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주의 모든 존재와 정신적 현상은 서로 의존해서 일어나고 존재하고 사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서로 의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은 전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전체는 개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자연, 나아가 인간과 귀신까지도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이는 깨달은 직후, 존재를 옥죄는 모든 굴레를 벗어난 자유로움을 실컷 즐겼다. 이때 이런 즐거움 속에 스스로 즐기며 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꿰뚫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이는 깨달음의 즐거움에 안주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45년 동안 길에서 살고 길에서 가르쳤다.

그이는 권력자, 자본가,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과 친하며 그들을 가르쳤다. 그이는 혼탁한 사회를 외면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살았다. 병자를 보살피고, 버림받은 자와 가난한 자, 약한 자를 위로하였다.

객관 세계는 개인의 의지와 달리 움직이고 변한다. 개인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필요성 때문에 반드시 고통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고통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에 따른 행동이 또한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은 2천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다. 삶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보다 먼저 나의 구원이다. 여기서 머물면 안 된다. 붓다에게서 보았듯이 더불어 너의 구원을 추구한다. 아니 너의 구원이 먼저이다. 나만 아니라 다른 존재가 경험하는 고통을 의식하고 그들의 문제와 고통의 해결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붓다는 자아를 버리라고 말한다. 자아는 실체가 없는 껍데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듯이 살아라는 뜻일 것이다. 그이의 관심은 사람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미친다. 모든 생물들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그만큼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 세계를 구제할 이념은 무엇일까? 붓다는 제자들에게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세상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다수의 선을 위하여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신과 인간의 복지와 선을 위하여.

추연창 도보여행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