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직업인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여가도 문화적으로 보낼까. 그들의 여가는 평범하거나 그렇지 않았다. 지휘자 곽승, 시인 문인수, 공연기획자 배선주, 소설가 김원우씨의 일상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여가를 들여다 보았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곽승, 골프와 음악으로 심신을 달랜다=마에스트로의 일과는 그의 성품과 다르지 않다. 오후 10시쯤 취침해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음악회 연습 외에 남는 여가에도 악보를 들춰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는 곽승은 골프가 유일한 운동이자 취미다. 이번 5월처럼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공연 일정이 꽉 차 있으면 체력 관리는 필수. 골프장에 자주 가진 못하지만, "핸디가 15~25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지휘자로 일할 때 골프를 배워 지휘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골프 외에 또 다른 취미는 요가. 40살 무렵에 미국에서 요가를 배운 곽승은 지금까지 매일 요가를 해오고 있다. "혹시 여행은 좋아하는가" 라고 묻자, "일생이 여행이었다"며 웃었다. 1969년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매년 몇 개월씩 미국을 투어하면서 연주 여행을 했다. 9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다녀오는 베네수엘라가 그의 유일한 여행처다(곽승은 올해 7월에도 베네수엘라를 다녀올 예정이다).
"잘 부르는 가요는 전혀 없어요. 대신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슈베르트 가곡이나 크라이슬러 바이올린 소품곡들을 자주 듣습니다. 클래식하기에도 바쁜데 남는 시간도 음악으로 보내야죠."
◆문인수 시인, 한 잔 술이 친구=문인수 시인은 2007년 미당 문학상을 수상한 뒤로 초청 강연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글쎄, 딱 꼬집어 어떤 시간을 여가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출퇴근하는 직장이 없고 부정기적으로 강연에 나가고, 책 읽고 시 쓰는 일이 일상"이라고 하니 여가와 일의 경계가 좀 모호하기는 하다.
그는 책을 읽거나 시를 쓰지 않을 때는 집 근처로 산책을 다니는 편이다. 수성구 만촌동 2군사령부 뒷산이 집에서 가깝고 그래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천천히 걸어서 갔다가 온다. 운전을 할 줄 알지만 웬만하면 걸어서 여기저기 다닌다.
예전에는 시간이 날 때,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요즘은 많이 줄였다. 술자리 자체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폭음을 하는 편이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병원에 가니까 술 끊으라는 충고를 들었다. (사실 문인수 시인은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폭음한다. 그는 가득 차 있는 술잔을 못 봐주는 성품이다. 잔을 채우기 무섭게 비우는 버릇이 있고, 그래서 그의 잔은 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급하게 마신다.)
문인수 시인은 의사의 처방을 근거로 술을 안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와 그는 오랜만에 통화했고, 인사차 '막걸리 한잔 하셔야지요?' 했더니 망설임 없이 '그러자, 어디서 볼까?'라고 했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술집을 순례하며 마셨다. 그러니까 문인수 시인은 의료인의 처방과 무관하게 여가 시간에 술을 자주 마신다.
◆배선주 대구 오페라축제 집행위원장(공연 기획자), 틈 나면 기도를?=배선주 대구오페라 축제 집행위원장은 일주일에 하루 혹은 몇 시간쯤을 아예 비워서 여가를 낸다. "나처럼 공연기획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이 전혀 없는 상태, 그러니까 완전한 여가는 없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유를 찾지 않으면 늘 일에 쫓겨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새벽 집 근처 앞산으로 등산을 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 가족과 식사하고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가족은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데 바쁘다는 이유로,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소홀히 대하기 십상이다. 그에게 가족과 함께 하는 '식탁 대화'는 일상에 쫓기느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용서하고, 화목을 다지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가는 기도다. 그는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신에게 기도한다. 기도를 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평안과 용기, 기쁨이 솟아오른다.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도 많이 한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다니요?) 이웃을 위한 기도는 그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사는 사람을 위한 기도는 그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사색을 즐기는 김원우 계명대 교수(소설가)=소설가 김원우씨는 솔직하고 '터프'하게 이야기했다. "주말에 여유가 생기면 앞산에 혼자 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산에 안 갈 때는 혼자 책을 읽는다. 누가 나를 찾는 사람도 드물고, 내가 누군가를 찾지도 않는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그에게 휴대폰은 정말 방해꾼일 뿐이다. 학교 연구실 전화, 집 전화면 충분하다. 뭐 그리 중요하고 바쁜 일이 많다고 사람들마다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지….
그가 술 자주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자주 안 마신다. 행복식당 안 간지도 오래됐다. (그는 가끔 대구 반월당 인근의 행복식당에서 술을 마신다) 시내 나갈 일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요즘 사람들은 혼자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더라. 언론 매체도 가족과 함께 밖으로 나가라고 부추긴다. 이건 문제다. 사람에게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왜 주말과 휴일마다 카메라 들고 자동차 타고 쏟아져 나와 멀리 다녀야만 하나?"라고 반문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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