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이 끝났다. 이 드라마는 지난 2월 19일 방영된 78회가 37.5%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3주 동안 가장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었고, 연속 16주 동안 시청률 1위의 일일연속극이었다. 소위 '막장 드라마'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유혹'은 시청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왜냐고 묻고 싶다. 이 따위 '막장'에 채널을 던지는 시청자들의 이데올로기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네이버 오픈 사전에 따르면 '막장 드라마'란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총칭한다고 한다. 물론 '아내의 유혹'은 이러한 점잖은 정의를 초월하는 하이퍼 울트라 슈퍼 막장 카드들을 보여주었다. 불륜, 폭력, 살인미수, 복수, 납치감금, 사기, 도박,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막나갈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집대성한 드라마가 '아내의 유혹'이었다.
슬라보예 지젝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릇된 일인 줄 모르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일인 줄 알지만 그렇게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둔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통상적인 삶의 태도를 그는 '냉소주의'라고 부른다. 지젝의 진단대로라면 지금은 냉소주의의 시대이다. 우리는 삶이 이렇게 흐르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냥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달리 살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냉소적 삶은 행복하지 않다. 물론 삶의 어떤 순간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조각난 행복과 즐거움은 모두의 결핍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뿐이다. '아내의 유혹'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줄 알지만 본다. 가끔 재미있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즐겁지는 않다. 가끔은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 하지만 달리 볼 만한 것도 없다.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거나 바깥공기라도 쐬면 되지만 그렇게 하긴 귀찮다.
'아내의 유혹'을 보는 우리는 냉소주의적 시청자들이다. 손을 움직여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억울하다. 우리가 냉소주의적이라는 말은 이해하겠지만, 그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독수리 5형제의 교훈은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지나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조사로 시끌시끌한 마당에 인플루엔자A형이 걱정을 보탠다. 나라 경제가 벼랑 끝에 매달려 걱정이 태산인데, 지역 경제는 한 술 더 뜬다. 북한은 개성 공단 근로자들을 억류하고, 로켓을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를 군사적 긴장상태로 끌고 간다.
언제부터인지 나라 살림이 앞뒤로 막혀 답답하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는 국민을 총알받이 삼아 정쟁에 매달려 있다. 어떻게든 돌파하고 싶지만, 무력한 우리는 다만 욕이나 몇 마디 내뱉고, 오후 7시 20분 텔레비전 앞에 돌아와 앉아 '아내의 유혹'에 채널을 맞춘다.
지젝은 '냉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실천'에서 찾는다.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게 아니라, '한다'는 데 있다. 삶은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꿈이 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꿈이 아니라, 그 꿈을 위해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다. 꿈에서 깨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자고 있는 자만이 꿈을 꾼다.
'아내의 유혹'이 진정 막장인 까닭은 그것이 보여주는 카드들 때문이 아니라, 전 국민의 40%가 그 드라마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막장인데, 드라마라고 별수 있냐고 생각한다면, 세상 돌아가는 꼴은 영원토록 막장일 것이고, 드라마 또한 그 세상 끝까지 막장으로 치달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앞에 오래 앉아 있어 다리도 저리고 몸도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다리를 펴고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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