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영화는 영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는 참 재미있는 영화다. 인생살이의 온갖 희로애락에다 현란한 강약 조절의 영화적인 묘미까지 만끽할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 전 세계 88개 영화상 석권!'이라는 선전 문구의 호들갑이 가히 흰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능수능란한 장인정신과 발리우드 특유의 눈부신 판타지의 행복한 만남이 빚어낸, 위대한 탄생이라고 떠벌릴 만하다.

여기에 덧붙여 '퀴즈왕'이라는 아프도록 짜릿한 일확천금의 판까지 펼쳐진다는데 어느 누가, 감히 무어라고 따지거나 시비를 걸 수 있겠는가. 산다는 게 갑갑하고 앞날이 막막할수록 한방에 인생역전, 그런 대박에 대한 백일몽은 그 꿈만으로도 벌써 황홀하다. 팥 심은 데 생뚱맞게도 콩고물이 마구 쏟아질수록 신바람이 커지고, 곁다리까지 광분시키는 게 퀴즈판이요, 그 판을 더욱 알짝지근하게 벌려서 보여주자는 영화가 아닌가. 비빌 언덕은 저만치 까마득하고 지친 마음 잠시나마 쉬어가자는 데까지 따라와서, 무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고 궁상떨면서 찬물을 끼얹자는 건 아니다.

혹자는 말한다. 숨 가쁘게 살아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새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숨 막히도록 가파른 세상살이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영화도 있다고. 어느 쪽이 더 윗길이라는 우김질이 아니다. 영화관 밖을 나와서야 문득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영화도 있고, 영화관 안에서 마냥 고갯짓을 따라하며 흥에 겨운 영화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런 것들이 엇갈리거나 헷갈릴 때 눈물겨운 희극을 넘어서 우스꽝스러운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냥 극장 안에서 외마디 감탄을 토해내는 것으로 피차 만족해야할 영화를 마치 일생일대의 대단한 감동으로 두고두고 되새겨야 한다고 설레발치는 것도 속보이는 짓이요, 이에 장단을 맞춰 깨춤을 추는 것도 속없는 짓일 게다.

'시궁창의 개, 백만장자가 되어 날다'라는 신기루를 영화 소개란이 아니라, 의료나 건강식품광고란에서 맞부딪칠 때는 정말 곤혹스러워진다. 황당한 공상 판타지를 넘어 엽기 잔혹극에까지 이르면 문득 아뜩해지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전율을 느끼고는 한다. 때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서 그냥 즐겨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번 어긋난 순간이나 장면을 되돌리거나 편집으로 고쳐 잡을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따라 하지 말자!' 라는 대목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비단 철부지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말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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