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아라파호족은 5월을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불렀다. 인디언은 부족마다 각기 다른 문장으로 된 달 이름을 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 같은 문장을 구사한 부족이 아라파호족이 아닌가 싶다. 정희성 시인은 그들의 11월인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을 제목으로 붙인 시를 쓴 적도 있다.
우리에게도 5월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다. 여름에 들어선다는 뜻을 지닌 입하가 있고, 햇볕이 좋아 모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이 있는 달이다. 겨우내 사라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제 모습을 찾아가는 충만하기 짝이 없는 달 이름으로 손색이 없다. 그 밖에도 세간에서는 5월을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다투어 5월의 주인 행세를 한다. 국가지정 기념일이 차고 넘치는 5월의 분위기는 아라파호족 5월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5월은 이런 날에 중독되어 푸르기만 했던 것 같다.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며 신명나는 걸음으로 행진을 하던 어린 시절에는 마냥 걸어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것만 같은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영문도 모른 채 자장면과 카네이션으로 이어지던 즐겁기만 한 5월이었다.
그러나 5월은 언제나 푸르게만 있어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5월의 갈피갈피에는 다른 색의 기억들이 끼어들었다. 노동절에서 근로자의날로 바뀐 메이데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은 5월을 피의 빛으로 색을 더했다. 게다가 유독 가까웠던 사람들이 세상을 달리한 무채색의 날도 늘어났다. 5월 1일은 임병호 시인, 11일은 박영근 시인, 17일은 권정생 선생, 18일은 아버지의 기일이다. 국가 지정 기념일도 많지만 내가 동그라미를 쳐놓은 날도 만만찮다. 자연스레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 된 것이다.
무상하게도 내가 5월을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은 변함없다. 대나무는 죽순을 키워내느라 기진맥진한 채 누렇게 부황이 들었고, 냉이꽃은 씨를 물고 여위어 가며 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풀과 나무가 푸르러지니 청개구리가 보색을 찾아 물 만난 듯 울고, 태기가 느껴지는 까치둥지는 점점 녹음 속에 가려져 간다.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니. 아라파호족이 5월을 왜 그렇게 불렀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세상이 약동하는 시점에서 그들은 왜 하필 죽은 자들을 생각한 것일까. 절묘하게도 그들처럼 나도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가까운 사람들, 혹은 역사 속에 묻혀간 그 수많은 장삼이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5월을 맞이한다. 그들처럼.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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