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해피 만다라

최재목 지음/시와 에세이 펴냄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이 다섯 번째 시집 '해피 만다라'를 출간했다. 시집 말미에 쓴 '시인의 산문'에서 지은이는 '시란 내가 세상을 떠도는 기술'이라고 언급하면서 '머물고 싶지 않은 사람, 유랑자이고 싶은 사람은 물음이라는 가속 페달을 늘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속도가 고정되는 순간 새로웠던 것들은 진부한 것이 되고, 재미있었던 것들은 그렇고 그런 일이 돼 버린다. 좌충우돌하지 않으면 생각도 없고 의문도 없다는 말이다.

물음이 없는 지점에 다다르면 최재목은 시인이 아니라 일상인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재목의 시작(詩作)은 '사고를 치며 다니는 행위'이기도 하다.(시집 맨 마지막 장에서 시인은 '매번 묻는다. 내가 왜 이 짓을 하는지. 또 저질러 버렸으니 할 말이 없다. 그냥 봐 달라고 빌 수밖에' 라고 덧붙이고 있다. 어쩌겠나. 사고 치고 용서 구하고 또 사고치는 게 덜 자란 아이와 시인의 숙명인 것을. 기자가 아는 한, 다 자라서 천명을 아는 '어른'은 시를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최재목의 시 쓰기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저질러 대기'라고 무 자르듯 규정할 수는 없다. 그의 말대로 '시는 고통의 대피소가 아니라 고통이 저지른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 창작이 어린 아이의 사고치기에 머문다면 세상의 모든 일탈을 시작(詩作)으로 규정해야만 하니까 말이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짜다 못해/ 굳어버린 산 위/ 소금호텔에/ 난, 누워 있을거네/ 소금 침대에 잠들면/ 소금의 별/ 소금구름/ 소금의 산책/ 소금노래/ 그러나 난/ 갈 수가 없네/ 그 높고 눈부신 상처/ 절망의 이마 빛나는/ 내 며칠간의/ 잠/ 불면의 언덕/ 모랫바람에 매달린 추억 한 송이/ 소금만 맺히네/ 흰 바람의/ 창가' -소금호텔- 중에서.

최재목에게 일상은 '짜다 못해 굳어버린 소금' 이지만, 그 짠 일상이 시를 잉태한다. 그래서 그 짠 일상의 현장은 시 창작소이며, 사고 현장이며, 시인을 '일상의 매너리즘'으로부터 지켜주는 백신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에 맞선 우리가 얼마나 바싹 '긴장'하고 사는 지 보여준다.

'출퇴근길에 유독/ 그 현수막만 눈에 띈다/ 불법무기류 자진신고 기간/ 긴장하며/ 온 몸을 더듬어보곤 한다/ 내가 그동안 숨겨온 불법무기류는 없는지/ …스스로 검색해본다/ 혹시 이건 단속에 걸리지나 않을지/ 저건 그냥 통과할 건지' -불법무기류 자진신고기간- 중에서.

시인이 거리의 '불법 무기류 자진 신고 기간'이라는 현수막에 움찔하는 것은 그 자신이 언제라도 사고를 칠 수 있는 무기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굳이 쇠비린내 나는 흉기만이 무기는 아니다. '세상의 모든 수상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버릇'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무기니까.

최재목은 시가 무엇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시는 언어의 허망함에 기댄 것이며, 언어로 절대와 영원을 드러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시에 의지하는 까닭은 언어라는 허망한 수단(형식)이 진짜이어서가 아니라, 시작(詩作)이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재목은 우리 삶 역시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가짜일지도 모를 삶을 명품의 '진짜 소가죽 가방'처럼 우리는 껴안고 살아간다고 '명품 소가죽 가방'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짜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는 진짜 혹은 천연 가죽을 그리워하지만 일찍이 그런 것들은 없다. 그러니 즐겁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예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말한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어제는 그저께와 같고/ 또 그저께는 그 전날과 같았다/ 아, 정말 할 일 없는 하루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 중에서.

최재목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걸어간다. 그렇다고 그를 허무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기자는) 최재목 시인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가 허무주의자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에게는 틀림없이 지켜내고 싶은 무엇이 있다. 지켜낼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시를 쓰지 않을 것이고, 지켜야 할 무엇이 있는 사람은 허무주의자일 수 없으니까. 127쪽, 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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