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사람 박무열, 그를 보면 쇠등 같단 생각이 든다. 그저 자기 갈 길만 묵묵히 걸어가는 모양이 쇠등 같고, 온갖 궂은 일을 다 끌어안고 가는 모습이 꼭 쇠등 같다. '묵묵하다' '과묵하다'는 말이 미덕이 아니라 욕이 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 그에게 쇠등 같단 말을 나는, 서슴없이 할 수 있다. 그만큼 나는 그를 잘 안다.
젊었던 어느 날, 내가 잠시 대구로 부산으로 헤매고 있던 날, 그는 나를 찾아 대구에 올라왔다. 지금 같은 봄 밤이었을까! 대구 동성로 뒷골목 막걸리 집에 앉아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그때,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나 멀리 도시로 가는 것만이 출세요, 성공이라 생각했다. 내 가슴속에는 도시의 화려한 밤 불꽃들이 가득 들어차, 다시는 그 어둡고 외진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우, 내려가자." 반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는 딱 한 마디 내뱉었다. 그날 밤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밤을 새워 마셨고, 새벽이 희뿌옇게 밝을 때까지 우리는 심중에 남겨 둔 한 마디까지 털어놓으며 살아 갈 날을 이야기했다.
그 후, 나는 그의 손에 이끌리듯 돌아와 우체국에 몸을 담았고, 그는 도청 공직자로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니, 제일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해야 옳은 말일 게다. 그렇게 자신이 원했던 농촌 관련 업무를 장장 25년이 넘게 하고 있는 사람은 그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툼한 책 한 권을 건네 주며, 집에 가서 읽어 보라고 했다. 무심코 한쪽씩 넘기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배추, 무, 고추, 들깨, 참깨, 콩, 파, 마늘까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는 야채며, 구황작물들의 생장과 친환경재배 방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작물들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 탓에 오히려 우리의 관심 밖에 버려진 것들인데, 그는 그런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보듬고 다듬어 책까지 엮어 우리 앞에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또 애향심도 남다른 사람이다. 한 번쯤은 집을 옮겨 편하게 출퇴근할 만도 한데, 한결같이 100리 길을 마다 않고 영천에서 오가고 있는 걸 보면, 어떨 땐 숙연해지기도 한다. 작년엔 신녕면에다 천연식품식초 가공공장까지 유치해 지역민의 고용창출과 농산물의 가공수출 길까지 열어, 지역 경제에 도움까지 주고 있는 그가 존경스럽다.
이채환(의성 춘산우체국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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