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최고의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억 대의 고가 작품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작품을 사 모으는 컬렉터(collector)를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눈길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컬렉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열정이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소시민과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은 컬렉터들도 '좋아하는 그림을 갖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첫 걸음을 뗐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사람과 미술'은 릴레이 토크식으로 앞서 등장한 인물이 다음 주인공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연재합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세계적 화랑 '리안갤러리'의 안혜령 대표가 첫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07년 3월 리안갤러리 개관전의 주인공은 '앤디 워홀'이었다. 이후 백남준, 김환기, 이우환, 김창렬 등 이름만으로도 주눅 들게 만드는 대표 작가의 전시회가 잇따랐고, 올 4월 설명이 필요없는 현존 최고가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 전시회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전국의 컬렉터들이 대구로 몰려들었고, 세계적 유명 작가들이 갤러리로 전화를 걸어와 전시를 희망할 정도가 됐다.
이를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안혜령 대표다. 화가를 꿈꾸던 여고생은 집안의 반대로 수학과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됐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틈만 나면 밤이고 낮이고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보다 못한 남편은 "차라리 그림을 사는 게 어떠냐"고 권했고, 그 때부터 평범하던 주부의 인생이 바뀌었다.
"25년 전쯤 처음 그림을 샀습니다. 당시 20만원 정도를 주고 산 그림이 제 첫 소장품이었죠."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데미안 허스트의 '도트'(dot) 시리즈를 구입할 정도의 세계적인 컬렉터가 됐다. 한의원을 하는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그림을 사 모았다는 세간의 말들에 대해 안 대표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 10년간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부족한 탓에 나중에 되팔 수도 없는 작품들이 많았죠." 물론 작가와의 인연 때문에, 갤러리를 돕는 차원에서 사 들인 그림도 적잖았다.
"최고의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도 이왕이면 더 좋은 것으로 샀습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좋은 그림이 나오면 눈물을 머금고 앞서 수집한 작품 서너점을 팔아서 한 점을 샀다. 리안갤러리를 개관할 당시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우환의 그림을 처분했다. 당시 그림들을 판 가격은 8억원 정도였지만 이후 그림값이 치솟으면서 30억 원대로 오르기도 했다.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그림은 제 것이 아니지만 지금 제게는 리안갤러리가 있으니까요." 남편과 자신의 성을 따서 붙인 '리안'. 처음 그림을 살 때 남편이 도와줬고 지금도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지만, 실제 이후 컬렉션은 순전히 안 대표의 몫이었다.
갤러리와 그의 집에는 웬만한 미술관도 소장하지 못할 작품들이 즐비하다. 지면을 통해 그가 소개하겠다고 선정한 작품은 미국 팝 아트의 대표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방송에서 우연히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씨킴(김창일) 회장의 인터뷰를 보게 됐고, 배경에 놓인 작품 'LOVE'에 눈이 꽂히고 말았다. "외국에 있는 작품을 수소문 끝에 지인을 통해 구입하게 됐죠." 알루미늄으로 만든 글자 위에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칠한 작품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시리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힌다. 그가 25년여 간 지내온 미술과의 인연은 짧은 글로 대신할 수 없다. "좋은 그림을 사고 나면 자다가도 일어나 볼 만큼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사랑 때문에 '성공한' 컬렉터로 자리매김한 것이겠죠." 갤러리를 시작한 뒤 운영비를 대기 위해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그림들이 그의 손을 많이 떠났다. 하지만 그는 갤러리를 접을 생각이 없다. 리안을 대구의, 아니 대한민국의 자존심으로 키울 생각이다. 그 꿈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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