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고 듣고도 믿지마?…사기수법 갈수록 지능화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사기꾼들의 범죄수법이 날로 지능화하고 있다. 최근 대구경찰청이 해결한 두 건의 사기 사건은 경찰관도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여자는 천재?

"그 여자요, 천재입니다." 지난달 군 장교들에게 '예비역 장군의 딸'이라고 사칭, 돈을 사취한 혐의로 구속된 Y(26)씨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Y씨 사기 수법은 교묘했다. Y씨는 우선 장교들의 휴대전화로 "혹시 김 중위 아느냐?"는 식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김씨 등 흔한 성씨를 사용해 성씨와 계급이 맞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장교들이 Y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박 대위, 이 사람 한번 만나보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직속상관이 여성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착각한 젊은 장교들이 응답했고 Y씨는 "나는 예비역 장군의 딸인데 교도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누구시냐?"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다.

대구경찰청 강영우 수사2계장은 Y씨 사기극이 보도된 뒤 Y씨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한 금은방 주인은 지난해 Y씨에게 '교도관 교위'라고 찍힌 명함을 받고 안심했다가 400만원 상당의 금을 털리고 말았다. "부하 직원에게 이야기해서 바로 계좌이체시켜 주겠다"고 한 뒤 주인이 금을 챙기는 사이 휴대전화로 '계좌에 400만원이 입금됐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 주인은 며칠 후에야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진짜 청와대 비서관이야!

청와대 2급 행정비서관을 사칭해 수천만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지난달 경찰에 붙잡힌 J(44)씨는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J씨는 지난해 초 지역 한 4년제 대학의 대학원 특수과정에 등록해 수개월 동안 강의를 들으며 사장, 의사 등 동기생들과 친분을 쌓았다. 동기생들이 나가는 각종 모임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러니 청와대 2급 행정비서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J씨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동기생은 없었다. 한 경찰은 "Y씨가 천재형이라면, J씨는 노력파"라고 했다.

대상자 물색을 끝낸 J씨는 본격적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 식품납품업체 사장에게는 '대통령 해외순방시 청와대에서 공항까지 짐을 실을 차가 필요하다'고 속여 고급 승용차 한 대를 받아 자신이 타고 다녔으며, 지역 한 병원장에게는 '청와대에서 중요한 일을 하다 보니 외모 관리가 필요하다'며 얼굴에 난 흉터 제거수술을 무료로 받기도 했다. 또 '방금 청와대 회의가 끝나 내일 대구에 내려가니 술이나 하자'는 식으로 수차례에 걸쳐 룸살롱 등지에서 향응을 제공받았다.

J씨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대통령 등 청와대 핵심인사 외국 순방시에는 자신도 외국에 나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경찰은 "외국에서 걸려온 J씨 전화를 받은 피해자들로서는 속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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