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팀이 한 점 차로 뒤진 9회말 투아웃 만루. 투수가 세트 포지션에 들어서면 수만 관중으로 메워진 운동장도 한순간 고요해진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가슴 졸이며 다음 상황을 기다리는 그 순간 유일하게 소리를 듣는 이가 있다. '쿵쾅 쿵쾅' 한밤의 시계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듯 모두가 투구에 시선을 모으는 적막한 때에 주심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경기 내내 심장은 강하게 뛰고 있었지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크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직업병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경기가 끝나고 탈의실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담배를 찾는다. 길게 들이마시는 담배 연기의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오늘도 무사히 경기를 치렀다는 안도감과 함께 몇 시간의 집약된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의 힘이 빠진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 맥주 한잔 생각이 절로 난다. 긴장의 여운도 쉬 가시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동료들과 허기를 채우며 술 한 잔 나누다 보면 어느덧 객지의 밤이 깊어간다. 시즌이 시작되면 심판들은 이렇게 유랑 생활을 한다. 그라운드에선 주목을 받고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에 서너시간 남짓 전문직 일에 종사하는 심판이라는 직업이 보기에 따라서 참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은퇴 후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직업중의 하나가 야구 심판이다. "일단 오른손을 들어 스트라이크라고 외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고독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라는 론 루치아노(메이저리그 심판)의 말처럼 심판의 세계는 실로 외롭기 그지없다. 애초부터 야구 심판은 자기중심적으로 설계되어진 역할이다. 뻔뻔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설사 판정이 잘못으로 판명되더라도 자신이 보고 내린 결정을 확신하고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 혼란에 빠져 그라운드에 설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사를 결정할 절대적인 권한을 얻은 대신에 주위의 모든 관계자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고뇌와 스트레스를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한다. "오심도 야구의 일부"라는 점잖은 표현도 한계가 있어 때로는 동네북이 되어야 한다. 인간으로서는 할 말이 있으나 심판으로서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외로운 세계에 갇힌 셈인가.
땀이 줄줄 흐르는 날 경기를 질질 끄는 선수가 싫을 수도 있고 점수 차가 큰 경기에서 어필을 해대는 감독이 악당처럼 느껴지는 심정들은 결코 용납되지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일년의 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고 술과 담배를 마다하기가 어려우며 불규칙한 일상 생활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수 노조와 함께 심판 노조가 설 때가 되었다. 심판의 이익을 개선함과 동시에 심판학교를 세워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인재를 육성해 우리나라의 모든 야구에 체계적으로 심판을 보급, 야구 발전에 기여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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