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 in 여성]대구남구보건소 유영아 소장

보건소 일? 보람이죠!

유 소장이 보건소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19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대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유 소장은 남편 동창회에 참석했다 수성구보건소장으로 재직중이던 이종헌씨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소장이 "의사가 없어 치과진료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수성구보건소로 와서 진료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한 것. 당시 대구의 보건소 가운데 치과 진료를 하는 곳은 수성구보건소뿐이었다. 하지만 상근 치과의사를 구하지 못해 한 달에 한 번 외래 치과의사가 진료를 봤다. 대구 전역에서 환자들이 몰려 들었지만 소화할 수 있는 환자수가 한정돼 있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종헌 소장이 한 달 동안 집에 찾아와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보건소를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막상 보건소에 가보니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유 소장은 다음날부터 수성구보건소로 출근했다. 지금처럼 치과병원이 많지 않았던 시절, 개원의가 버는 수입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았지만 돈보다 환자를 외면할 수 없는 의사의 양심을 따랐기에 후회는 없었다. 환자가 너무 많아 하루에 55명까지 봤다. 치과진료의 특성상 50명이 넘는 환자를 하루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잠시라도 쉴틈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10여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체력이 고갈돼 그만둘 생각을 했다. 그러다 1994년 보건소장 자격 요건을 규정한 지역보건의료법을 보게됐다.

"법에 보건소장은 의사로 하되 의사가 할 수 없을 경우 보건직 공무원으로 대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건직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을 치과의사나 한의사 등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 법은 꼭 고쳐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법 개정을 둘러싸고 보건복지가족부와 지루한 실랑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유 소장은 4년 동안 보건복지가족부에 법 개정을 건의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진정이었다. 그곳에서 유 소장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1998년 법이 개정됐다.

유 소장은 법 개정이 이루어진 이듬해 수성구보건소에서 남구보건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대 치대 동기로 남구청장으로 재임 중이던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유 소장이 남구보건소장으로 부임한 지 10년 흘렀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 동안 보건소 역할도 많이 변했다. "평균수명과 함께 건강수명도 늘어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수명은 길어졌는데 건강수명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노년에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보건소가 해야할 일도 변하고 있습니다. 진료부문은 점점 축소되는 반면 건강증진사업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유 소장은 건강증진사업과 치과진료에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남구보건소는 건강증진사업과 치과진료에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보건소 평가에서 1위, 전국 보건소 맞춤형건강관리사업 평가에서 최우수를 차지했으며 건강증진사업도 2년 연속 전국 평가에서 1등급을 획득했다. 또 대구에 있는 몇몇 치과병원의 협조를 얻어 장애인구강관리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유 소장은 최근 오랜 숙원 하나를 풀었다. 1970년 지어진 보건소 건물을 40여년 만에 허물고 올 초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2천479㎡(75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과 넓직한 공원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 내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보건소 일이 즐겁습니다. 개업의로 남았으면 돈은 더 많이 벌었겠지만 잃은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보건소는 베푸는 곳입니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는 충만감이 인생을 보람있게 만듭니다." 유 소장은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경우 재활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재임기간 재활관련 사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포부를 밝혔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