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이다. 울긋불긋 봄꽃들의 잔치도 벌써 대단원에 접어들었다. 그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철쭉이다. 잎보다 꽃이 나중에 피는 철쭉은 5월 중순까지 그 붉은 빛을 뽐낸다. 진홍빛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철쭉을 찾아 영남의 소금강산으로 불리는 합천 황매산(黃梅山'1,108m)으로 떠나보자.
합천읍 소재지를 지나 황매산으로 가는 도로 변 양쪽에는 산과 들이 싱싱한 푸르름으로 다가온다. 황매산군립공원 초입서 철쭉군락지까지 구불구불 꺾어 돌아가는 도로는 구절양장(九折羊腸)에 다름없다. 굽이치며 돌아가는 길이지만 차창 가로 비친 풍광에 눈을 뗄 수 없다. 싱그럽고 푸른 나무와 꾸밈없이 흐르는 계곡, 멀리 보이는 기기묘묘한 바위형상이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한다.
차로 10여분 오르자 철쭉군락지인 황매평전(60만㎡ 정도)에 다다랐다. 진홍빛 철쭉의 꽃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록이 아름다운 이맘때 펼쳐지는 산상의 대반란이다. 아무리 감각이 무딘 이라도 아찔하게 붉디붉은 빛깔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주변의 산릉에 포근히 깃든 그야말로 끝이 없는 철쭉의 바다다. 둥그런 분화구 속에서 솟아난 듯 붉은 빛깔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하다. 멀리 산봉우리 사이로 피어오는 운무와 나란히 친구처럼 손잡은 철쭉군락은 마치 선계의 복숭아꽃처럼 신비스럽다. 철쭉꽃 사이사이의 인간이 오히려 신비한 자연에 끼인 티끌처럼 느껴진다.
철쭉의 진한 향기에서 깨어날 즈음 황매산의 진면목이 눈앞에 드러난다. 황매산 자락에 자리한 기묘한 형상의 모산재(767m)가 눈길을 당긴다. 바위산에 산이나 봉이 아닌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라는 글자가 붙은 것이 예사스럽지 않다. 황매산의 한 줄기인 모산재는 거대한 바위덩어리 봉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변하며 삼라만상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 하다. 높은 쇠사다리 위의 넓은 바위끝에 돛대처럼 우뚝 솟은 '돛대바위' 부처의 얼굴 형상을 한 '부처바위',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순결바위'등 각양각색의 모습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한편 '합천황매산철쭉제(2~17일)'가 펼쳐져 다채로운 행사와 먹을거리 장터, 농특산물직판장 등도 열린다.
◆영암사지(靈巖寺址)
황매산군립공원에서 가회면 방면으로 3km 정도 가서 오른쪽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의 흔적이 서려 있는 영암사지가 있다. 폐사지 절터인 영암사지는 창건 시기가 통일신라~고려말로 추정되며 가람의 흔적, 배치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재 영암사지에는 금당'회랑터를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쌍사자 석등, 삼층석탑, 귀부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융성했던 옛 사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특히 절터 상단부에 있는 쌍사자 석등은 국보로 지정된 속리산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조각이 아름답고 섬세하다.
영암사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보물 제480호인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은 무너져 내려 있던 것을 1969년 복원한 것으로 양식으로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사의 가람 배치를 보면 본존불이 모셔져 있던 맨 위의 금당을 중심으로 석등과 석불이 일직선이다. 특이한 점은 석탑과 석등 사이의 석축에 양쪽으로 돌계단이 있어, 옛날 영암사 당시엔 금당으로 가기 위해 이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영암사지 유물 중 백미는 쌍사자 석등을 꼽을 수 있다. 보물 353호인 이 석등은 여덟마리의 사자가 조각된 팔각의 받침돌 위에 강인하고 힘찬 모습의 두 마리 사자가 그 위의 앙련과 화사석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하나의 통돌을 깎아서 만들어졌는데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천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살아 움직일 듯한 사자의 근육들이 생동감 있게 조각돼 있다. 영암사지 뒤편에 두 개의 귀부가 있다. 서편의 귀부는 거북의 몸을 하고 있지만, 머리 부분은 포효하듯 용맹스런 용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동편의 귀부는 거북의 등 껍질을 일일이 정교하게 새겨 놓은 것은 물론, 운무 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이라도 하듯 구름문양도 넣어 놓았다. 아쉬운 점은 일제시대 두 귀부의 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고려청자 파편 등 아직도 유물을 발굴중인 영암사지는 불국토를 꿈꾸던 옛 선조들의 이상향과 함께 폐사지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주는 감동은 한동안 잊을 수가 없을 듯 하다.
◆합천영상테마파크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고 싶으면 황매산에서 10여분 거리의 합천영상테마파크로 가보자. 영화'태극기 휘날리며''모던보이'를 비롯해 올 10월 개봉 예정인 인기스타 강동원 주연의 '전우치' 등을 촬영했으며 드라마로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한류스타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 및 '서울 1945' '경성스캔들' 등의 주 세트장으로 활용됐다. 지금은 KBS1TV '청춘예찬'의 촬영이 한창이다. 이곳에 가면 80년대 서울의 뒷골목, 1884년 설립된 중앙우체국, 1897년 건립된 원구단, 1909년 설립된 한국은행, 1930년 신세계백화점의 첫 지점 등 과거의 모습을 보며 현재를 추억하게 한다. 전쟁 장면에 쓰이는 탱크'비행기 등도 진열돼 있어 부모와 함께 찾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개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바람흔적 미술관
여행의 피로도 덜 겸 차와 예술작품을 구경하려면 바람흔적미술관을 찾으면 된다. 영암사지에서 가회면 방면으로 차로 10여분 가다가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된다. 가회면 소재지에서 고갯마루에 들어서면 저 멀리 산중턱에서 키재기라도 하듯 스물 두개의 바람개비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달력'시계'신발 없이 바람처럼 살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며 미술관을 지은 원래 주인은 떠난 뒤 새 주인이 심어놓은 예쁜 꽃들이 방문객을 손짓한다. 1층은 연중 작품전시 및 음악회 등을 열고 있으며, 2층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회를 보러 오는 관람객보다 독특하고 예쁜 미술관 자체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이 많다.
▶가는 길
대구 방면=(50분) 88고속국도~고령나들목~국도33호선~합천
부산 방면=(1시간30분) 남해고속국도~함안'군북나들목~대의면~국도33호선~합천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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