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할매]할매 마케팅 '할매○○식당'

오래된 맛집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변함없는 음식 맛이나 인테리어 등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상호에 '할매'라고 붙는 식당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탕이나 국수, 보쌈 등 전통 한식집엔 어김없이 '할매'라는 단어가 붙는다. 특히 대구엔 '할매○'란 상호를 내건 식당들이 유달리 많다.

◆왜 할매?

# 친근감 가미 맛있는 이미지

# 푸짐한 할머니 추억 연상

식당 가운데 유독 '할매'란 단어가 붙은 상호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할매'라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할매'란 이미지가 전통이 있고 친근감이 가며 맛있다는 의미를 준다는 것. 대구가톨릭대 외식식품산업학부 유영진 교수는 "우리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푸짐하면서도 맛있고 정겨웠다"며 "고객들에게 추억을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기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또 원조라는 의미로 '할매'란 상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식당마다 자신의 식당이 원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할매' 상호를 고집한다는 것. 유독 '할매'란 상호로 원조 논쟁이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냥 고객들이 편안하게 부른 것이 자연스레 상호가 되기도 한다. 유 교수는 "보통 1950, 60년대 생긴 오래된 식당들은 자녀자들이 운영했는데 당시 상호나 경제 마인드가 거의 없었다"며 "그냥 단골 고객들이 '어디에 할머니가 하는 식당'이란 의미로 '할매집'이라 불렀고 그것이 익숙해져 상호가 됐다"고 했다.

▶'할매' 붙어야 맛있다?

'할매'가 붙은 유명한 식당 가운데 '현풍 박소선 할매곰탕'을 빼놓곤 이야기가 안 된다. 전국적으로 달성 현풍 하면 할매곰탕을 떠올릴 정도로 이름을 날린 식당이다. 원래 고(故) 박소선 할머니가 50여년 전 '일심식당'이란 상호로 시작했다. 담백한 국물 맛에 쫄깃쫄깃한 고기와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어우러져 특유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소문나면서 손님들이 "현풍할매곰탕'으로 부르자 아예 식당 이름을 '현풍할매곰탕'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1987년 박 할머니가 사망한 뒤 같은 이름을 쓰는 업소와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고, 결국 지금의 상호를 갖게 됐으며, 현재는 외아들(차준용)이 할머니의 뒤를 이어 50년 고유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윤옥연할매떡볶이'도 유명세를 치르는 식당 중 하나다. 윤옥연 할머니가 30여년 전 대구 신천시장에서 만들기 시작한 떡볶이는 청양 고춧가루를 듬뿍 사용해 눈물이 날 정도로 맵다. 하지만 한번 먹으면 중독돼 평생 단골이 된다고 해 이른바 '마약 떡볶이'란 별칭을 받을 만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했다. 원래 상호가 '신천할매떡볶이'였으나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지금의 상호로 바뀌었다.

동성로 '경주할매국수'는 40년간 국수 하나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당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황금연 할머니의 깔끔하고 쫄깃쫄깃한 칼국수 맛을 잊지 못한다. 삼겹살 부위만을 골라 잘 삶아낸 수육(편육)은 국수맛을 더욱 당기게 하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한다.

'서재 원조 할매 메기 매운탕'도 할매 식당의 대표 주자다. 경남 함양 출신인 고(故) 이귀달 할머니가 20여년 전 달성 다사읍 서재리 금호강 부근에서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식당 자체는 허름했지만 푸근하고 정감 어린 맛으로 성서공단 업체 사장들이 하나 둘 찾기 시작했고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됐다. 나중엔 할머니 사진을 걸고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뛰어들어 지역에 여러 곳의 체인점이 운영되고 있다.

이 밖에 '조방낙지'나 '무교동낙지' 등 다른 지역의 낙지요리 브랜드의 틈바구니 속에서 20년 가까이 대구 대표 낙지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손복자 부산할매낙지'(서구 내당동)나 일본식 어묵 국물과 우메보시 맛이 60년 전과 똑같아 아직 할아버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북성로 '할매집' 등도 꽤 유명하다.

▶전국 곳곳에 할매식당

전국적으로 이름난 식당 가운데 '할매'나 '할머니'가 붙은 경우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부산 동래구청 인근 골목 안에 위치한 '동래할매파전'을 들 수 있다. 부산시 지정 향토음식점 1호점이기도 한 이곳의 역사는 4대에 걸쳐 며느리들이 전통 맛을 이어오면서 80년에 이른다.

경남 통영엔 충무김밥의 원조집이 있다. 보통 충무김밥이라고 일반명사화됐지만 그런 유명세에는 '뚱보할매 충무김밥'의 역할이 컸다. 여객선터미널 앞 부둣가에 터를 잡아 60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은 엄지손가락만 한 김밥 8개와 갑오징어 무침, 무김치에 시래깃국이 나와 진한 '바다 맛'을 느낄 수 있다.

'고래도시'란 명성답게 울산엔 고래고기집이 많다. 그 가운데 장생포 포구에 자리한 '고래고기 원조 할매집'이 대표적. 3대째 이어오는 60년 전통의 고래고기 맛집으로 신선한 밍크고래만 취급해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로 눈을 돌리면 '원할머니보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원할머니보쌈은 원래 30여년 전 청계8가에서 할머니가 간판도 없이 장사하다 서서히 서울 사람들을 매료시켜 그냥 할머니 보쌈집이라 불렸다. 그러다 1991년 프랜차이즈 시장에 뛰어들어 급성장했고 지금은 웬만한 지역에 분점이 있을 정도로 성공을 거둬 국내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꼽히고 있다.

또 '명동할머니국수'는 50년대 후반 서울 명동에서 '서서 먹는 할머니국수집'으로 시작했다. 할머니가 말아주던 두부국수와 비빔국수는 끊임없이 단골을 만들었고 전국적으로 맛집 명성을 얻으면서 1993년 프랜차이즈 시장에 뛰어들어 지금은 10여개의 체인점이 영업 중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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