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동안 여러 가지 일로 심신이 피로해 골목골목 숨어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일조차 소홀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찾아가기보다는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독자라는 40대 여성분과 서울에 본사를 둔 한 주간지 기자의 "좋은 휴게 공간을 찾아 소개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서는 카페기행을 계속 해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 도시나 대학가에 가면 나름의 맛과 스토리를 지닌 카페를 찾을 수 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밀집한 경산이나 경주, 경북대 주변은 물론 전문대 주변에도 젊은 층들이 삼삼오오 또는 홀로 찾는 카페가 있다.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주변에도 이름난 커피집이 몇 곳 있다. 기자가 찾은 곳은 계명대 동문 네거리에서 동쪽으로 나있는 도로 바로 왼쪽 블록의 4층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앤즈커피(053-585-5247)'. 주소는 달서구 신당동 1721의 17이다. '커피 볶는 집'이란 표식을 하고 있어 들어가 봤더니 용량 1kg 짜리 로스팅머신이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커피를 볶는다고 마스터인 박효승(37) 씨가 전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 카페에서는 박씨와 매니저가 손님들의 시중을 드느라 정신이 없는 듯 했다. 홀 안에 마련된 세니마실(커피 교육실이기도 하다)에서 대학원생들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의 나른함을 떨치며 수업의 효율을 높이는 좋은 방법인 듯 싶었다. 진한 커피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카페인을 마시면서 수업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웰빙'이라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카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서울에서는 요즘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할 수 있는 공간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고 커다란 빌딩에는 그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박씨에 따르면 몇몇 교수님께서 대학원 수업을 할 때 학생들과 의기투합해 교실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이곳을 찾아서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내며, 강의 효율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커피가 프랑스 등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 카페가 예술가 등 보헤미안들의 이야기 장소와 또 창의'창작의 장이 됐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카페가 학문을 깨치고 익히는 또 다른 하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카페도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막 생겨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최첨단 영상시설을 갖춘 세미나실을 갖춰 단체손님 유치에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경북예고 근처의 한 카페의 경우도 10여 평 가량의 세미나실을 갖춰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카페 입장에서도 대학원 등 학생들을 단체로 맞이할 경우 커피를 파는 것은 물론이고 원두와 함께 커피 추출관련 기구들까지 팔 수 있는 등으로 일석이조 뿐 아니라 미래의 소비자인 커피애호층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의 단체 손님들을 선호하게 된다.
아마도 '앤즈커피'는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4층 건물인데도 2004년 오픈한 이래 6년째 커피 집으로의 이름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층을 차츰 늘려가고 있는 데에는 이 같은 휴식과 학습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뭐 그리 '눈 가는' 인테리어도 없다. 들어서면 마주하는 분위기는 오래된 찻집 같기도 하고 80년대 음아감상실 같기도 하다. 하지만 4층이라 사방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가게 안은 밝고 멀리 서쪽으론 계명대 캠퍼스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도 괜찮은 편이다.
처음 동생 애남(29) 씨와 함께 카페를 오픈했던 박효승 씨는 한 커피점 매니저로 취직해 있는 동생과 함께 커피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카페 상호도 동생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커피를 볶은 지는 올해로 3년째 되는 이곳의 자랑은 '더치' 커피. 50평 홀 중간에 인테리어 겸 실제 추출기구로도 사용되고 있는 더치 기구에서 흘러 내려 모아진 커피는 한층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워터 드립' 커피라고도 불리는 '더치' 커피는 옛날 네덜란드 상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운반해가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커피를 보관하며 마시는 법을 고민하던 끝에 고안된 추출법으로 알려져 있다. 찬물에 오랜 시간을 두고 추출해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뒷맛이 일품이다. 앤즈커피에서 '더치' 커피 값은 한 잔에 3천500~4천원. .
마스터인 박씨는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3~6시 커피교실을 운용한다. 나는 낮 시간에 마시기에 적합한 인도네시아 만데린을 주문해 마셨다. 입안에 꽉 차오르는 짙은 향은 쓴맛을 완화시키고 섬세한 맛을 풍부하게 한다. 자바'수마트라'보르네오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인도네시아는 적도가 지나가고 있어 무덥기 때문에 아라비카종 커피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아 대부분 지역에서 로브스타종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의 수마트라 섬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만데린이라고 부르며, 아라비카종만큼이나 우수한 품질이다. 단일 품종으로도 맛이 좋지만 쓴맛과 신맛이 고르게 분포돼 브랜딩용으로 제격이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앤즈커피 내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