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청송의 역사·문화 가치를 느낀 뒤 이웃 '영양'으로 향했다.
청송가는 길을 톡톡히 경험한 일행은 다시 영양가는 길에 시간과 땀을 더 투자해야 했다. 대구에서만 족히 3시간은 잡아야 한다. 영천 방면의 경우 2개의 고개를 넘어 다시 청송읍, 진보면을 거쳐 구불구불한 길을 30분은 더 달려야 했다. 중앙고속도로 의성 방면에서 접근해도, 안동에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차를 세운 뒤 허리를 몇 번이야 펴야 다다를 수 있다.
영양은 세인들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았다. 영양은 꼭꼭 숨어 있었다.
영양은 봉화처럼 고산협곡에 갇혀 있지는 않다. 영양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드디어 일행이 다다른 영양(英陽). 뭐랄까. 청정, 안온함…. 영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도시의 찌든 일상을 털어내고 심신을 놓이고 싶지 않은가. 한마디로 '휴(休)'하고 싶었다. 영양은 그랬다. 경북의 곳곳을 다녔지만 영양만큼 자연 그대로인 곳은 없었다. 시골의 순박함도 영양 만의 자산이었다.
왜 영양은 깨끗하고 안온할까? 일행은 일월산과 반변천으로 향했다. 일월산과 반변천은 영양의 모든 것을 품고 있고, 영양을 넘어 경북에 생명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한 몸이다. 반변천(109.4km)은 낙동강의 동쪽 원류다. 일월산 북쪽에서 발원해 영양의 장군천과 청기천의 지류를 품은 뒤 청송 진보를 거쳐 임하댐, 안동의 낙동강으로 긴 여정길을 가고 있다. 반변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낙동강에 큰 물을 내주는, 어머니의 젓가슴같은 존재였다.
일월산은 한반도의 주(主) 산맥인 태백산맥의 남쪽 끝에 위치한 고봉(일자봉·1,219m)이다. 일월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경북 북부지방의 산치고는 좀 싱겁다. 모난 데가 없다. 뾰족하지가 않다는 말이다. 둥글둥글 덩치가 큰 부드러운 산이었다. 그래서 세인들은 일월산을 여자(女)의 산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일월산은 동해가 바라다보이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 해 일월(日月)산이라 이름지어졌다. 정상부의 두 봉오리 이름도 일자봉과 월자봉(1,210m)이다.
일행은 반변천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발원지가 있는 일월산으로 여정을 계속 이었다. 반변천을 따라 일월산 가는 길은 가히 싱그러웠다. 신록의 푸르름은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금세 씻어줬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계곡 물이 말라 허연 바닥을 드러내는 이 가뭄에 반변천은 낙동강의 최상류임에도 물이 풍부했다. 일행도 계곡에 물이 시원스레 흐르는 적을 근간에 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낙동강은 반변천에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일월산 입구에 다다르자 자생화공원이 일행의 시선을 붙잡았다. 전국 최대 규모의 자생화공원이다. 하지만 공원 이전의 모습은 광산이었다. 일제 때부터 1976년까지 금과 은, 아연을 캤던 용화광산이다. 용화광산은 한창일 때 종업원이 500명에 달했고, 인근 주민만 1천200명이 넘는 경북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금속광산이었다.
일행은 5년 전 폐광을 취재하러 이곳을 들른 적이 있었는데, 당시 공원 앞 반변천에는 폐광의 흔적(검붉은 바닥)이 일부 남아 있었다. 5년 후의 광산은 자생화가 흐드러진 공원으로 옷을 갈아 입었고, 공원 앞 반변천은 습지에 가까울 만큼 젊어 있었다. 일월산과 반변천이라는 자연의 힘이 폐광이라는 인공의 산물을 물리친 것이 아니겠는가.
공원을 지나 차로 5분 정도 달리면 '반변천 발원지 7km'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최대한 차로 발원지 가까이 접근한 뒤 차에서 내려 일월면 용화 2리 속칭 '윗대티골'로 1시간쯤 걸어 올랐다. 윗대티골은 일월산 북쪽 정상에 가까운 마을로 마을 위쪽에 발원지가 있다. 발원지에 가까울수록 일월산의 계곡은 좁아졌지만 이상하게도 물은 갈수록 마르는 게 아니라 흘러넘쳤다. 작은 폭포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폭포는 10리 계곡 길 내내 돌과 나무사이로 물을 감추듯 말듯하는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물색 역시 청명 그 자체였다. 곱디고왔다. 그 동안 들은 적이 별로 없는 계곡의 물소리도 발원지까지 가는 내내 일행의 귓전을 때렸다.
발원지는 말 그대로 '흐르는 물줄기가 처음 시작한 곳'이란 뜻이다.
영양은 봉화와 영주가 발원지를 찾듯 지난해부터 반변천 '뿌리찾기'를 시작했고, 드디어 올해 6개월간 산속을 헤집은 끝에 속칭 '칠밭목이'에 '뿌리샘'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사람도 족보라는 뿌리를 갖고 있듯이 산과 강도 그 뿌리가 반드시 있음이요, 그 뿌리를 찾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동굴형태의 뿌리샘은 여느 약수나 샘처럼 고여 있지 않았다. 굴속 바위틈에서 물이 쉼없이 흘러내려 샘을 이루고, 샘은 다시 그 아래로 머금은 물을 아낌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일월산은 암산(바위산)이어서 물이 암석 밑을 주로 흐르며 뿌리샘(680m)에서 드디어 물줄기가 지표면을 뚫은 뒤 계곡의 물을 모아 반변천과 낙동강에 물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뿌리샘은 낙동강 최상류의 또 다른 '물뿌리'인 셈이다.
계곡의 반변천은 싱싱했다. 일행이 반변의 물로 목을 축였으니 말이다. 일월산과 반변천의 산길은 일행이 밟기조차 미안했다. 이름 모를 식물들이 산길까지 소복이 덮고 있었고, 나무와 나무가 서로 맞대 하늘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또 일월산 계곡에는 희귀어종인 열목어가 자주 목격된다고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 영양군도 조만간 열목어 서식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산과 물이 만나면 마을을 이루고 마을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내준다.
일월면 주곡리에는 한양 조씨의 동족 마을 '주실마을'이 있다. 38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이다. 시인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반변천을 따라 영양읍을 거쳐 조금만 내려오면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언덕위의 마을'이다. 작가 이문열의 고향으로, 2001년 광산문학연구소가 문을 열어 이문열의 문학 열정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군자 장계향 선생(두들마을),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인 서석지와 경정도 영양 만의 보물이다.
그래서 일월산과 반변천은 영양인들에겐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또 영양인들에게 영양의 미래를 열어주고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미래 가치인 지 일월산과 반변천에서 느껴봐야 할 것이다.
이종규기자 영양·김경돈기자 사진 윤정현
자문단 김동걸 영양군 학예연구사 김수영 영양군 기획계장 김상준 영양군 유통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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