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녀들은 행복할까] ②이혼한 그녀

▲ 한국에서 이혼녀로 살기에는 그리 녹록치 않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다. 사진은 부부의 갈등과 이혼을 다룬 TV극
▲ 한국에서 이혼녀로 살기에는 그리 녹록치 않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다. 사진은 부부의 갈등과 이혼을 다룬 TV극'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부부가 갈라서는 것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들.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고 터놓았다.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한국. 거기서 이혼녀로 살아가는 그녀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

40대 초반의 그녀는 이혼한 지 벌써 11년째다. 그녀는 일 때문에 자정이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않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혼이 절실했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와 구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바깥에서는 점잖고 자상해 보이기까지 한 남편이 집에만 오면 다른 사람이 됐다. 그 날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자 6살 아이는 울고 세살짜리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의 눈에서 어린이의 눈빛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빛이 번쩍였다. "눈에서 불이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알게 됐다"는 그녀는 "아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보는 순간 아이들을 위해서도 여기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이혼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혼 후 그녀는 다투지 않고 몸이 편안해져서 좋았다.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 행복해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 그녀는 위자료를 한푼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리고 아이들 공부시킬 일도 문제였다. 당장 가족의 생계부터 꾸리는 것이 급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보리라고 이혼했기 때문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아이들의 상처를 줄여보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 이혼 후 그녀는 보험이면 보험, 장사면 장사 뭐든지 닥치는 대로 했다. 억척스럽게 생활했지만 아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환경을 제공하기에는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당당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이들도 행복해 하고요. 그런데 노부부가 다정하게 걷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나도 모르게 혼자 결정하고 혼자 살아야하는 어려움이 컸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집안에서 조용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정도면 이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혼한 여성으로 살아가기엔 한국은 참으로 녹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주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이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아버지'란 존재가 그립겠느냐고 되물었다.

재혼을 생각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돈 없는 여자를 누가 데려가기나 하느냐"며 웃는다. "웃음이라도 한번 보내면 돈 없는 여자가 흑심을 가지고 접근할까 경계하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 후회와 배신감에 혼란스러운 그녀

그녀는 이혼한 지 3년째인 40대 중반이다. 남편의 구타와 외도로 이혼을 했다. 위자료도 꽤 받았다. 그녀에게 이혼 후 1년은 천국과 같았다. 남편의 폭력도 없었고 마음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2년째가 되자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연락을 하면 고등학생 딸이 '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상처가 됐다. 자신이 없어도 너무나 잘 돌아가는 그 집을 보면서 이상한 배신감에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딸 아이를 만나서 같이 자려고 하면 아이가 아빠 기다린다며 그냥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엄마 행복해야 돼'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갑니다. 자식들에게 내 자리는 없어진 것이지요. 그들에게 저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 끔찍하고 무서워지곤 합니다."

그녀는 돈이 조금 있으니 모두들 자신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말이라도 걸어오면 혹시 돈때문에 접근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며 이런 것도 이혼 후유증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요즈음은 자녀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자신이 없어도 너무 잘 살고 있는 한때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까지 겹쳐 우울증세까지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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