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古都는 울고 싶다…쇠락한 옛 '팔도主都'들

'왕년(조선시대)에 최고 잘나갔던 곳'. 바로 경상, 전라, 충청, 강원 등의 주도(主都)들이다.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강원도는 강릉·원주 등. 이들 두 도시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도 이름을 정한 것이다. 이들 도시는 전성기에는 인구뿐 아니라 경제·교통·문화 중심지로 큰 영화를 누렸다. 이곳을 다스리던 관리도 지역 유지도 큰소리를 뻥뻥 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돼 있나. 옛 위상을 찾아보기 어렵고, 심지어 상대적으로 초라한 도시로 전락한 곳이 상당수다. 그나마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현상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도시가 쇠락하는 것은 당연지사. 도의 주도에서 오히려 변방으로 전락하면서 인구나 경제규모 면에서 그 위치를 신흥도시들에 내주며 주도 시민들은 배고픈 것이 현실이다. 경주와 상주, 전주와 나주를 중심으로, 이 주도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살펴본다.

◆상주·나주 '가장 쇠락한 도시'

주도 중 가장 서글픈 현실에 처해진 곳은 상주와 나주. 두 도시 모두 25만명이 넘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이제 1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상주는 현재 인구 10만명에 가까스로 턱걸이를 했고, 나주는 1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변변한 산업시설도 없다. 그저 옛 시절만 생각하면 안타깝다.

상주에는 산부인과 의원이 3곳밖에 없다. 출산율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도심지는 20년째 큰 변화가 없다. 상주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인구·산업적 측면에서 1위가 아닌 뒤에 0이 하나 더 붙은 10위권 정도로 뒤처져 있다. 경북도내 시 중에서도 뒤에서 두번째다. 1, 2위는 경주도 아닌 포항과 구미가 차지하고 있다.

윗대부터 상주에서만 70년 가까이 살아온 금중현(67)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상도의 기둥도시인데도 경북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주 역시 옛 영화를 꿈꾸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옛 관가가 있던 번화가는 밤이면 을씨년스러울 정도며 번화가는 1980년대 풍경 아직 그대로다. 시내에는 아직도 4일과 9일 5일장이 서고 있으며, 88올림픽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시장 풍경이다.

3대째 50년 동안 나주 옛 관청 바로 앞에서 곰탕집을 운영해오고 있는 나주곰탕 하얀집 주인 황순옥(67·여)씨는 "예전에는 정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점심때나 저녁때나 손님들이 미어터졌지만 10년 전부터 거리 자체가 한산해졌다"며 "어떡하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참 안타깝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경주·전주 '옛 수도는 옛말'

경주와 전주도 천년고도의 수도, 옛 백제의 수도였던 때를 생각하면 현 위치는 아니올시다. 특히 전주에 비해 경주가 현대에 접목하는 속도가 더 느렸다. 전주는 전통문화와 더불어 교육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지난 40~50년간 인구는 계속 증가추세로, 현재 60만명이 넘는 인구에 국회의원도 3명이다. 반면 경주는 30만명이 넘었던 인구가 26만명 선으로 감소했으며 국회의원도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두 도시는 또 우연하게도 이번 4·29 재보궐선거도 같이 치렀으며, 모두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도시다. 경주는 많은 예산을 가져올 수 있는 힘있는 여당 후보라도 한번 심판한 데 대해서는 번복이란 있을 수 없었다. 현실적인 돈보다 정서적인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두 도시의 공통점은 산업화에서는 철저히 뒤처진 것. 천년고도 경주는 지난 참여정부에서 방폐장 유치에 사활을 걸었고 마침내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만큼 산업의 성장동력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충주·청주, 강릉·원주

청주와 충주 역시 경상도, 전라도 두 주도와 비슷한 처지. 한반도 중앙 교통의 요충지로 역사적으로 늘 중심에 있었지만, 이젠 대전에 밀려 내세울 게 별로 없다.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제2의 행정수도, 그리고 산업 연구단지 집적지가 됐다.

청주시는 인구가 64만4천명으로 현 충청북도 도청소재지. 하지만 큰 발전이 없어 고민이다. 충청도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도 청주는 전국 10대 도시 안에 들어서며 우뚝 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현재 인구 20만8천명의 충주시는 상주나 나주처럼 초라한 현실이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산업시설이 없어 미래 발전전략도 친환경 휴양레저스포츠 산업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강릉은 2000년 이후 도내에서 인구유출이 가장 많은 지방자치단체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다. 강릉의 2007년 말 현재 인구 22만484명으로 올 들어 인구 감소세가 완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원주는 상대적으로 나은 형편이지만 30만명이 넘은 인구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들의 꿈, 청사진

언제까지 '왕년에' 아니면 '신세타령'만 할 순 없다. 각 주도들이 꿈꾸는 미래는 밝다. 타 도시가 가지지 못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 속에 내재된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경주는 지금 꿈틀대고 있다. '인구 30만 돌파' '국회의원 지역구 2개' '1인당 GRDP 첫 3만달러 돌파' 등 향후 10년내 희망의 소식이 터져나오길 꿈꾸고 있다. '역사문화중심도시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는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됐다. 여기에다 양남·양북지역은 신재생에너지 중심도시로의 비전을 꾀하고 있다. 또 감포 해양관광중심도시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다.

'청정도시 상주 곶감', '2010 세계대학생 승마선수권대회', '상주 동화나라 축제' 등 상주의 비전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친환경·친인간'이다. 특히 국제승마장이 건립될 경천대 일원은 경북도가 추진하는 낙동강 프로젝트사업과 연계, 미래 성장동력으로 '굴뚝없는 생산'의 첨병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상주시는 인구의 고령화, 전반적인 인구 유출도 젊은 농업인의 유턴을 통해 청사진의 나머지 부분을 채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주와 나주 역시 '이제는 역사발전에서 뒤처질 수 없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전주는 역사와 전통이 어우러진 도시로 도심을 재창조하면서 외곽 지역에는 신주거지역을 건설해 지속적인 인구유입책을 펴고 있다. 나주 역시 나주와 영산포 중간에 위치한 시청을 중심으로 신시가지를 구축하고 옛 관가가 있었던 곳도 새롭게 정비해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강릉과 원주는 춘천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도시로서의 위상 확립과 고부가가치 녹색산업, 청정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옛 주도들의 변화상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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