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옛 주도들 '과거와 현재'
'우야다 이래까지 됐노.'(경상도) '시방 뭐여, 다 떨어진 걸레도 아니고.'(전라도) '뭐~, 언젠가 발전하겠지유.'(충청도) '산업화, 그게 뭐 드래요.'(강원도)
각 지역별 옛 주도(主都)들이 옛 영화에 비해 현재 뒤처진 발전에 대해 한마디씩 쏘아댄다.
산업화에 앞서 간 도시들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끌 때, 이들 주도들은 그야말로 영구불변(永久不變)의 법칙이 작용했나 싶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점점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상당수 남아서 흘러간 옛 시절 '황성옛터'만 부르고 있는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특히 상주·나주·충주 등은 나머지 주도들에 비해 쇠락 정도가 더 심하다. 인구 10만명, 20만명 유지에 목매며, 몇 십년 동안 인구는 계속 줄어가고 산업경제도 쇠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대학이나 병원, 극장, 백화점, 유흥가 등 근간이 되는 도심기능도 갖추지 못해 그나마 남아있던 시민들도 인근 지역이나 대도시로 가서 소비를 해 지역 경제는 빈사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잘나갔던 '상주·나주·충주'
"그래도 한때 전성기가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버텨오다 10, 20년 전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후퇴 내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상주는 서울 2배 크기의 면적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여섯 번째로 면적이 넓다. 안 쓰는 땅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려한 자연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소백산맥의 천황봉, 문장대, 백화산, 갑장산, 노음산은 물론 견훤산성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임야가 840.94㎢(전체 면적의 67%)나 된다. 대구의 전체 면적(885㎢)과 맞먹는 크기다.
기실 상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20만명 이상을 유지한 내로라하는 경북지역 대표 군 중 하나였다. 1965년 인구가 26만5천670명으로 당시 대구 인구가 81만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이들이 상주에 살고 있었다. 이처럼 상주가 경북도내에서도 큰 지역에 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명주 때문. 뽕나무를 이용해 누에를 치는 잠업은 노동집약 산업이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상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 1974년 상주의 고치 공판량은 108만㎏(전국 생산량의 10%)에 이르렀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예로부터 이어져온 농촌중심사회에서 상주의 태양은 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965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인구는 지난해 10만명 선 붕괴라는 위기로 이어졌다. 현재 상주의 인구는 10만7천명. 칠곡군을 제외한 경북도내 전체 지자체의 인구 감소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
2003년 상주시는 '상주장기비전 star 2020'을 내놓았지만 추세반전은커녕 앞서 지적한 대로 지난해에는 인구 10만명 선이 한때 붕괴되기도 했다.
나주는 산업화 이후 급전직하했다. 산업화 이후 전남의 총 사업체 중 여수시가 16.6%로 1위를 차지하고, 목포시 13.5%, 순천시 12.7%, 광양시 5.8%에 이어 4.9%로 확실한 5위로까지 떨어졌다. 인구 역시 1980년대 초 나주군 시절 25만명에서 10년마다 5만명가량씩 줄어들어 이제는 1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충주는 아예 변화가 없다. 1990년 이후 더 늘지도 줄지도 않고 20만명 정도를 유지하며 충청북도 2번째 도시로서의 허울뿐인 위상만 갖고 있다.
◆아직 건재, '경주·전주·청주·원주·강릉'
8개 주도 중 그나마 5개 주도는 아직 살 만하다. 또 미래를 꿈꾸기엔 그렇게 뒤처지지도 않았다. 새로운 도약을 꿈꿀 터전은 적어도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당시 경주 인구는 22만7천여명. 49년 뒤 1999년 29만2천여명으로 피크를 이뤘다가 그 10년 뒤인 현재 26만8천여명으로 다시 줄었다. 현재 면적은 1천323㎢로 경북 전체 면적의 6.95%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기초단체 중 두 번째로 넓은 면적. 하지만 신라 및 통일신라의 거점, 상당한 면적 등도 고도제한을 포함한 개발제한, 환경보전, 옛 고도의 영화에 자족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고고학, 미술, 건축사적 측면에서 전국 어느 지역 못지않은 주요 도시였다.
산업구조 면에서 1996년과 2001년 사이 약 6년 동안 사업체 수가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였다가 다시 조금씩 내리막과 오르막을 왔다갔다 했다. 질적인 성장이 느렸다. 현재 업종별로는 도·소매업이 전체의 28%, 숙박 및 음식점 27%, 기타 서비스업 12%, 제조업 9.6%로 제조업 비중은 도시 여건상 대체로 낮았다. 이 같은 구조는 좀체 바뀌지 않고 있다. 경주는 해방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전성기였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주 역시 인구가 63만명으로 만족하진 않지만 아직 건재하다. 인구도 1960년 20만명 정도에서 10년 단위로 10만명씩 늘어나 현재 60만명을 돌파했으며, 2020년 80만명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광역시로의 편입이다. 전주시의 전략도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들기보다 전통문화도시를 표방하며 21세기 창조형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다. 4일 방문한 도심지도 젊은이들로 넘쳐났고 활력이 넘쳤다.
청주 역시 서울과 가까운 덕분에 그래도 활기가 넘친다. 충주와 달리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충남 천안과 함께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 발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더불어 청주는 민간주도로 청원군과 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인구증가와 산업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릉은 2000년 이후 도내에서 인구유출이 가장 많은 지방자치단체. 통계청의 전·출입 인구이동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전출인구에서 전입인구 수를 뺀 시의 순유출 인구는 1만5천959명. 이 중 수도권으로 이동한 인구수만 1만6천166명.
인근에 갈 데가 없어 결국 수도권으로 인구가 다 유출된 것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20, 30대 젊은 층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수도권 인구 유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주시도 30만명이 넘긴 하지만 불안하다. 원주시는 현재 혁신도시라는 명분하에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도내 일부지역의 경우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예상 인구목표 설정에 약간의 혼선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주도 벌어먹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이 때문에 원주는 오는 2020년까지 인구 45만명을 목표로 도시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첨단의료·건강도시 원주 조성을 꿈꾸고 있다.
현상유지에 머무를지 옛 영광을 찾을 도시가 탄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5개 주도들은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옛 주도들의 날개달기 '기지개'
역사는 돌고 도는 법. 경상도, 전라도 등지 옛 주도들은 산업화에서 뒤처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한동안 성장엔진이 멈춘 탓에 단기간에 옛 번영과 자존심을 회복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들 주도 시민들의 발전을 향한 내적 욕망은 끓고 있다. 나이 70, 80세가 다 된 지긋한 노인도 도시의 옛 영화 재건이라면 발벗고 나설 각오가 돼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기고 활력을 잃은 도시에 사는 노인으로 있기보다 뭔가 볼거리, 즐길거리를 찾아온 관광객에게 도시의 역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도시의 성장동력에 불만 붙으면 언제나 타오를 준비가 돼 있는 옛 주도들이다. 옛 수도였던 경주나 전주는 발전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높다. 상주나 나주 역시 지금이 후삼국·고려시대와 같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충주·청주도 항상 정권을 잡지 못해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핫바지 이론' 탈출에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강릉·원주 역시 강원도 시대를 여는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역사문화·신재생·해양관광, '경주'
경주는 눈부신 꿈을 꾸고 있다. '세계적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발판을 마련해 2006년부터 3조3천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문화유적 발굴·복원작업에 들어갔다. 역사유적의 관광자원화를 꾀하고 있는 것.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양성자가속기센터 유치,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이전 등 3대 국책사업이 마련돼 있다. 두 프로젝트의 기반을 마련한 경주는 다만 정치권과 연계해 역사문화도시 특별법 지정 및 기금 조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국책사업이 추진되는 양남·양북지역을 업그레이드해 '신재생에너지 중심지역'으로 조성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시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과 연구소 등을 대거 유치하려는 것이다.
근세 전통문화도 복원, 역사문화도시와 연계한 관광자원화를 꾀하고 있다. 명주실 짜기 명인, 천연염색, 무형문화재 누비장, 전통음식 등이 복원·계승해야 할 전통문화의 연계고리들이다. 경주시는 현재의 오릉 옆 7만여평 터에 전시관, 작업관을 포함한 전통문화집적단지를 꾸미기 위해 역시 사업타당성 용역을 맡겨놓았다.
◆친환경·고부가가치 도시, 상주
상주는 정체돼 있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발전가능성은 상당하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저탄소 친환경 산업들이 속속 상주 청리산업단지에 공장을 짓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 지난해 세계적 자동차 부품공장인 캐프그룹이 들어선 데 이어 올 1월에는 웅진폴리실리콘㈜이 1조5천억원을 투자해 태양광 핵심소재 폴리실리콘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효자종목인 농산물 수출도 긍정적이다. 상주시의 농특산물 수출실적은 최근 3년 동안 50% 이상씩 매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 곶감을 필두로 배, 포도, 선인장 등 7개 품목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다.
2010년 세계 대학생 승마선수권대회가 열릴 국제승마장도 기대가 크다. 경천대와 가까운 승마장 인근 낙동강에 승마트레킹 코스를 개발, 상주를 승마의 본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국책사업으로 추진될 4대 강 살리기, 낙동강 프로젝트, 백두대간 프로젝트 등 굵직한 사업의 중심축에 상주가 자리 잡고 있어, 상주시의 환골탈태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통문화도시 '전주·나주'
전주는 인구 60만이 넘는 도시로서 그래도 도심이 활기차며 산업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다른 주도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옛 백제의 수도 완산주(전주)가 이에 만족할 수는 없다.
야심찬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됐다. 인구 100만의 광역시로의 발돋움도 꾀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과거 서남권을 호령했던 전라감영 복원(742억원 투입)이 중심에 있다. 구체적인 주요 계획으로는 ▷도심을 젊은 도시로 재생 ▷비즈니스 거점과 여가문화시설 중심의 북부도심 권역 ▷주거환경 정비와 상권 활성화로 팔달로 권역에 21C형 주거문화 창조 ▷공공기관 이전지역 재생을 통한 백제로 권역 실버 밸리 조성 ▷새만금 배후도시 기능 등을 2020년까지 계획을 세워 준비하고 있다.
나주 역시 큰 도약을 위해 영산강 프로젝트를 선도하는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계획도 담겨 있다. 첨단과 전통이 어우러진 인구 15만의 자족형 생태도시를 꿈꾸며 전남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또 영산 문화의 뿌리는 '나주'라는 것을 강조하며, 전남의 행정·교육·경제·교통의 중심도시로의 재탄생이 곧 이뤄질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영산강 프로젝트는 3단계 사업으로 진행되며, 총 8조5천550억원이 투입된다. 생태하천, 수변개발, 환경기초시설 등 예전에 번영을 누리던 영산포를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충주·청주, 강릉·원주 '새 출발'
경상도와 전라도 주도처럼 충청도와 강원도 주도들도 용틀임을 하고 있다.
청주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으로 충청지역의 맹주 역할을 해왔고 충주는 고구려시대 때부터 국원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구 64만4천명의 청주시는 실제 거대 국가 프로젝트를 따내 진일보하겠다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오송생명과학도시, 오창과학산업단지, 청주생태산업단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 실제 청주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이를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반면 현재 인구 20만8천명의 충주시는 친환경 기업 관광도시의 발전모델을 세우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2020 충주비전과 발전전략'에서 충주는 ▷IT·BT산업의 자족적 신도시 건설 ▷'한반도대운하' 내륙항, 복합물류단지 건설 및 운하연계 신산업벨트 구축 ▷세계적 의료복합단지 건설 ▷충주호 물길100리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세계적 수변형 테마파크 조성 등을 거대 목표로 삼고 있다.
원주시는 전국 243개 기초자치단체에서 26번째로, 강원도 내에서는 최초로 인구 30만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혁신도시 착공과 지난 3월 기업도시 착공 등 각종 개발과 더하여 원주시의 인구 증가는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 철도 복선과 원주∼강릉 복선철도, 제2영동고속도로, 원주와 신행정수도 간 철도와 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 확충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강릉 역시 인구 감소세가 주춤하면서 복합레저관광도시로의 재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김태진 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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