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대법관의 법조 윤리

8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당시에 촛불집회 관련 재판의 내용과 진행에 관여하고 배당 권한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 "재판 관여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으므로 "경고 또는 주의 촉구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3월 19일 대법원장이 심의를 요청한 지 50여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한편에서는 신 대법관의 행동이 법원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용인되어 온 관행이라며 윤리위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엄혹하다. 윤리위의 결정은 재판 관여와 사법행정권의 남용을 보다 강하게 인정한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3월 16일자 조사 결과나, 4월 20일에 신 대법관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6년 만에 개최된 전국 법관 워크숍에 참석한 법관들의 지배적인 의견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받는다.

야당으로부터는 "낮은 처벌을 권고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매우 유감스러운 처사"라는 비난마저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신 대법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거나, 대법원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파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언론의 전망은 조심스럽다. 윤리위가 징계위 회부를 권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 대법관이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도한다. 2월 23일에 최초의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심각한 비판이 이어졌고, 진상조사단의 조사와 결과 발표가 있었고, 윤리위에 회부되었음에도 신 대법관이 사퇴를 거부해 왔으니 그런 '정치적인' 전망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법원 규칙인 법관윤리강령에 선언되어 있다.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이 같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명예를 굳게 지켜야 하며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법관은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 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할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직업인보다도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판관이 판관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심판받는 사람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질 때만이다. 법조 윤리가 로스쿨의 필수 과목으로 개설되고 변호사시험 과목으로 도입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한 법조 윤리는 모든 법관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대'법원의 '대'법관에게 더욱 더 강하게 요구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관행'을 들먹이는 것은 가당치 않다.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 법원의 관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법관과 법원에 대한 모독일 터이다.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워 자리를 보전하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대법관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법관의 법조 윤리를 유린해 온 잘못된 행태들을 말끔히 일소할 일이다. 사법부 최고의 직위인 대법관이 대통령의 지휘 아래에 있는 행정부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사법부를 행정부 밑으로 밀어넣는 비윤리적인 행태이다. 퇴임한 대법관이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하여 법원의 구성원들에게 짐이 되는 것 또한 비윤리적인 행태이다.

사법의 권위는 그 구성원인 법조가 엄격한 법조 윤리를 갖추고 있을 때만 인정될 수 있다. 권위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근신하고 또 근신하라는 법조 윤리의 명령은 그래서 지엄하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재판과 관련하여 대법관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받는 상황에서야 본인의 권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 전체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이 늦었다. 불명예는 이미 넘친다. 신 대법관은 더 이상 자신과 사법부를 욕되게 하지 말고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을 터이다.

김창록(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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