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는 바로 영어다. '영어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영어에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20조원 가운데 14조원이 영어를 배우는 데 쓰인다고 한다. 이렇게 영어에 지극정성이라면 분명 한국은 어디서나 영어가 술술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영어 경쟁력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으로는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며 자녀를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구교육대 상록문화관에서는 '영어교육 발전을 위한 권역별 토론회(대구경북)'가 열렸다. 교육과학기술부 주최로 영어교육의 질을 높이고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토론회에서 영어공교육 우수사례 3건이 소개됐다. 이 가운데 '방과후학교 영어교실'(대구 용계초교),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경북 구미 인의초교)의 성공 비결을 알아봤다.
◆'학원보다 방과후 영어교실'
지난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초교의 2층 영어2실. 캐나다 출신의 엘리스 웬즐러(Ellis Wenzler·23) 강사가 15명의 학생 가운데 1명을 불러냈다. 미리 칠판에 적은 내용대로 영어로 서로를 소개하며 안부를 묻는 시간. 3학년 여학생은 아무 두려움 없이 자연스레 외국인 선생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음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각각 1명씩 짝을 지어 같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는 15명의 학생이 1쌍씩 짝이 되어 영어로 서로 소개했다. 웬즐러 강사와 보조강사인 홍일표(21·미국 유학 중 휴학)씨가 교실을 돌며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학생들은 전자칠판에서 재생되는 대화 내용을 따라하고, 선생님이 준비한 게임 등을 하며 영어수업을 즐겼다.
영어2실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1층에 위치한 컴퓨터실로 옮겼다. 평생학습 지원프로그램(TALL)을 활용해 이날 배운 내용을 퀴즈 형식으로 풀며 복습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나오는 영어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오후 5시쯤 웬즐러 교사가 학생들에게 '5과(Lesson 5)를 끝내라'는 숙제를 내고 수업은 끝이 났다.
이 수업은 용계초교가 지난 3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중 '원어민 영어교실'의 하나인 '온·오프라인 기초반'이다. 학생 15명이 주2회(월·목요일) 각 90분씩 강사 주도로 활동 위주의 오프라인 수업과 TALL을 활용한 온라인 수업에 함께 참여한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해 6단계로 방과후 영어교실 수업을 하고 있다.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초급반은 영어 소리를 익히는 파닉스 기초반(2개)과 심화반, 3~5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급반은 온·오프라인 기초·심화반, 4~6학년이 참여하는 특별반은 영어토론을 하는 ESL심화반 등이다.
◆용계초교의 성공 비결
용계초교 윤병주(57) 교장에 따르면 방과후 원어민 영어교실은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됐다. 2007~2008년 '영어수업 시수 확대정책 연구학교'로 지정돼 원어민 교사 2명이 수업을 진행하고, 지난 1월 2주 동안 단기 어학연수형 'YES(용계영어학교) 캠프'를 운영한 성과를 학부모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윤 교장은 "영어캠프를 열 때 어머니들이 '2주에 영어실력이 얼마나 나아질까?' 했다가 결과에 다들 놀랐다"고 했다. 6개 수업에 참가한 90명 학생 모두가 마지막 날 각국의 명승지 등을 영어로 자신있게 발표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때부터 공교육을 불신해 아이를 학원으로 보내던 학부모들도 아이들을 학원 대신 방과후 영어교실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용계초교는 준비를 철저히 했다. YES캠프 이후 학부모 수요조사를 기반으로 수업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구미문화원에 위탁운영을 의뢰했다. 윤 교장은 "조사 결과 학부모들은 ▷원어민 교사가 있고 ▷학생 수가 소수이며 ▷학습결과를 관리해 준다는 이유로 학원을 선택했다. 방과후학교로 이를 만족시켜 주면 학교에서도 '영어교실'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용계초교의 방과후 영어교실의 학사관리는 까다롭다. 각 반마다 과제물로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도록 하고 TALL을 통해 온라인 공부도 가능하게 했다. 매 4주차 마지막 주에는 강사가 학생의 영어 향상 정도와 말하기·듣기·읽기·발음·이해도 등의 전반적인 영역을 평가해 학생의 집에 통지한다. 강사가 직접 작성한 수업평가를 토대로 학생의 발달사항, 개선점 등을 학부모와 전화 상담도 한다. 매달 학부모들에게 수업 공개도 한다. 학부모들은 수업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끊임 없이 제기하며, 학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선한다. 학교 내 전 구역에서 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꾸민 것도 강점이다.
그는 "방과후 영어교실에 대해 국가지원이 조금만 더 늘어도, 학부모들의 인식만 바뀌어도 사교육비를 줄이고 영어 공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장지영(36·경북 구미 인의초교) 교사는 지난해 구미 옥계초교에 근무할 때 했던 'SMBI 활동' 사례를 발표했다. 영어연구부장을 맡고 있던 장 교사는 옥계초교가 영어시범학교로 선정된 것과 관련,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영어를 즐겁게 배우고, 자신있게 표현하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대학·대학원 때 영어를 전공했고 3년 정도 영어 전담도 했다. 영어를 좋아해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는 장 교사는 "'영어교육을 재미있게 함으로써 아이들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자'는 생각으로 기존에 모아 둔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미국 하버드대학 교육학과 교수의 '다중지능(MI:Multiple Intelligent) 이론' 가운데 초교 영어 교육과정에서 강조되는 ▷공간-시각(Spatial) 지능 ▷음악(Musical) 지능 ▷신체-운동(Bodily-Kinesthetic) 지능 ▷대인관계(Interpersonal) 지능을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4학년 7개반을 대상으로 단어 꾸미기나 알파벳 책 만들기(S활동 표현하기), 동물 소리 맞추기와 노래에 맞춰 줄넘기(MB활동 즐기기), 영어 역할극과 원어민 선생과의 만남(I활동 함께하기) 등을 실시했다.
시청각적으로 영어를 접하고 이를 익히고 활용하게 하면서 아이들은 달라졌다. 첫 시간에 영어로 인사를 건네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4학년생들이 못하고 틀려도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이 친구가 틀리면 '너 틀렸어'라고 하면서도 서로 웃게 됐다. 영어로 말하는 것을 그만큼 덜 무서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장 교사는 지난해 '영어 교실수업 개선 연구대회'에서 2등급을 받았다.
그는 SMBI활동을 '학생 수준에 맞춰서 쉽고 간단하게 자주 하는 영어교육'으로 정의했다. 이렇게 할 경우 아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고, 영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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