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구에서 남구는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속속 개발되는 부도심과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대구가 재편되면서 남구는 쇠락의 대명사가 됐다. '균형 발전'은 헛구호가 된 지 오래. 남구청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각종 개발사업도 불경기와 여러 난관에 걸려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현실은 더욱 답답해졌다.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획기적인 변화 모색이 시급하다. 남구의 현실과 문제점, 지향해야 할 비전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번성했던 남구의 기억
8일 앞산 아래에서 만난 남구 주민들은 남구의 옛 영화(榮華)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웬만한 기관장·정치인·기업가 집이 모두 앞산 밑에 있었어요.", "부유한 동네지만 실력자들이 많아 범죄자들도 피해가는 분위기였죠."
남구의 발전은 언제부터 막혀버린 것일까? 많은 관계자들이 달서구 분구 이후인 1988년을 전환점으로 꼽는다. 남구 인구는 분구하던 1987년까지 꾸준히 늘어 38만여명에서 정점을 이룬 뒤 이듬해 분구로 10만명이 줄었다. 이후 2000년 19만6천여명으로 처음 20만명 밑으로 떨어진 뒤 현재 17만여명까지 감소했다. 20년 사이 반토막도 안 남은 셈이다.
재정상황도 비슷하다. 특별한 생산 시설이 없는데다 인구마저 줄면서 세수가 꾸준히 감소, 남구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17.6%로 대구시 8개 구·군 가운데 가장 낮았다.
앞산은 한때 남구의 뛰어난 주거여건을 상징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미군부대와 함께 남구 발전의 장벽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어린 시절을 봉덕동에서 보냈다는 김모(37·남구 이천동)씨는 "어린시절을 봉덕동에서 보내고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4년 전 다시 남구 주민이 됐는데 앞산과 미군부대에 걸려 발전이 정체된 건 어릴 적 보던 그대로다"고 말했다.
◆개발 정체 속 원룸·빌라만 폭증
대구 남구는 미군부대와 앞산으로 인해 개발이 제한돼왔지만 주거지역으로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적잖다. 과거 건축법 규정에 묶여 2층 이하로 대명6·9동에 지어진 주택들은 지금도 남구의 대표적인 얼굴로 남아 있다. 9일 둘러본 대명6·9동 주택들 가운데 일부는 담장을 허물고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들어가 살고 싶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관련 법규가 차츰 완화되면서 빌라나 원룸이 낡은 주택들을 밀어냈다. 빌라나 원룸은 주로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잠시 살다 가는 대표적인 '떠돌이 주거 형태'로 거주민들은 대개 주민등록 이전도 잘 안 하고 동질감도 떨어진다. 불법 주·정차,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의 부작용도 곳곳에서 빚어졌다. "개발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런 사정에 따라 현재 대명동 일대에는 예전의 단독주택과 빌라, 원룸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9일에도 대명6·9동 일대에서는 공사를 막 끝냈거나 한창 공사 중인 원룸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주민 서모(66·대명6동)씨는 "개발제한 규정이 바뀌면서 주택이 헐린 자리에는 어김없이 원룸이 들어섰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오래 살았는데 이제는 보통 1년, 짧으면 5, 6개월 정도 머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구청장 임기가 4년인데 다음 선거를 의식하다 보면 구정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민원에 이끌려다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인구 늘리기 성과도 미미
남구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는 단독주택이다. 원룸·빌라가 급증했지만 2007년 남구의 주거유형은 단독주택이 57.3%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몇 년 사이 재개발·재건축이 성행했지만 전체 53개(지난달 10일 기준) 정비사업 가운데 준공된 2곳을 제외하곤 불황으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 인구 18만명이 안 되는 남구 입장에서는 "인구 유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장기적인 개발 전략 없이 진행된 사업은 남구 전체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남구청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인구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지금까지 수성구 파동과 달성군 가창면을 편입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패로 결론난 상태. 최근에는 달서구 분구 때 떨어져 나간 송현동을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해당 지자체에서 꺼리는데다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늘리기를 위한 정책 기본틀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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