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영리보험'의 치명적 결함

"손가락 봉합에 하나는 6만달러, 또 하나는 1만2천달러가 필요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던 미국 민간의료보장보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의 한 장면이다.

미국 의사의 제안에 환자는 결국 손가락 하나만 수술을 하고,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는 하나는 그냥 버려야 했다. 그래도 필자는 미국의 환자가 대한민국의 환자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보험가입자의 선택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환자는 영리보험사에 보험료를 내면 보험금은 무조건 지급되는 줄 안다. "병원비 1억 반복 보장"이란 광고 문구가 홈쇼핑이나 인터넷에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보험금은 지급될 것이라 믿고 보험사에 사전 확인도 하지 않고 수술부터 할 것이다. 병원비가 없으면 우선 빚이라도 내서 수술비를 대려 할 것이다.

그런데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을 보험 계약은 상당히 많다. 우선 보험 계약을 처음 할 때 작성하게 하는 '보험계약 청약서'에 보험 가입자의 '자필 서명'이 본인이 아닌 '타인'이 한 경우엔 보험 계약이 무효가 되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보험 약관에 딱 맞는 사고이어도 단지 이름과 서명을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부당할 수 있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보험금 지급 거부 사유는 '고지의무 위반'이다. 보험 가입 전 과거 병력이나 현재의 건강 상태 뿐만이 아니라 직업이나 하는 일, 운전 유무 등을 보험계약 청약서에 질문하고 있는데 이를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자필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험 가입자는 상당수가 보험설계사 등에게 '구두'로 말한다. 보험 설계사가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하면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거짓으로 고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은 법적으로 가입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가입자의 책임을 묻는다. 또한 다른 보험사에 가입한 보험을 알리지 않아도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해 1급 진단을 받은 가입자가 영리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장해가 아니라 희귀 질환에 의한 장해로 선천성이기 때문에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유였다. '사고의 원인'이 '재해가 아니라 질병'인데, 보험금 지급 사유는 '재해(교통사고)'일 때만 지급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아 보험금을 청구해서 받았다. 그런데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반복 청구를 했더니,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암을 직접 치료할 목적으로 입원한 것'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암을 직접 치료할 목적의 입원'은 '항암 치료한 날, 방사선 치료한 날, 그리고 혹을 떼 내는 수술을 한 날'로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암으로 인한 합병증이 동반되어 입원 치료를 받은 경우 '직접 치료'가 아닌 '간접 치료'를 받은 것이라 '암 입원비 지급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암 보험을 가입시킬 땐 듣지 못했던 내용으로 보험사의 고지의무 위반이라 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에선, '암 직접 치료'인가 '간접 치료'인가를 묻지 않고 무조건 지급하는데, 영리 보험사에서 암 입원 보험금을 주지 않아 가입자는 입원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치료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영리 보험사가 지급할 보험금을 못 받아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면, 국민건강보험에서도 입원 치료비에 대한 보험금을 받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보험계약 체결시의 '하자'나 '사고의 원인', '치료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으며 환자 개인이 먼저 내고 나중에 보험금을 받도록 되어 있지 않은 '국민건강보험'은 '보험금 지급 거부'란 있을 수 없지만 영리보험은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국민에겐 어떤 보험이 더 좋겠는가? 단호하게 국민건강보험이라고 하고 싶다.

김미숙(보험소비자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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