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한줄로 읽는 한권

익숙함과 낯섦, 편안함과 신선함

소설에 있어서 리얼리티는 많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질 법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고 '주위에서 많이 본 듯한 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설은 특수하고 유별나고 희한해야 한다. 독자들은 '진부한 이야기'에 식상해 하며, '전형적인 캐릭터'에 쉽게 하품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작가는 독자들에게 안방 침대 같은 편안함과 야영지의 침낭과 같은 신선함을 동시에 주어야 할 만만치 않은 의무가 있는 셈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즉 일반 독자들이 쉽게 흥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엄마'는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을 요리조리 닮아있다. 그는 자상하고, 넉넉하며, 남편에게는 순종적이고,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이다. 그러나 그런 친밀한 캐릭터가 주는 편안함은 이 소설이 가지는 미덕의 일부에 불과하다. 소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엄마'가 주는 편안한 기능성의 이면에 '한 여자로서의 엄마'가 가지는 불편함을 교묘히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익숙함 뒤에 도사린 낯섦의 미학을 선보인다.

너는 성당 입구까지 걸어나와 긴 회랑과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광장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창비/299쪽/1만원

편안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난제는 순수 문학에서보다는 장르 문학에서 훨씬 절박하게 요구되는 과제인 듯하다. 순수 문학에서 '리얼리티'는 '실험'이나 '표현'으로 용인될 수 있으며, '독창성'은 '진정성'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장르 문학은 무조건 '편안'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폄하되며, 무조건 '새롭지' 않으면 '같잖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빈도의 수도 순수 문학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기 때문에 조금만 어색하고 조금만 비슷해도 졸작, 아류작이라는 딱지가 붙기 마련인 것이다. 여성 무협작가 진산의 '사천당문' 같은 소설은 그런 난제를 훌륭하게 극복해 낸 보기 드문 걸작이다. 작가는 무협지의 운명적인 주인공 자리에 여성을 위치시킴으로써, 전통적인 무협지의 호연지기에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코드를 접붙이는 데 성공했다. 어느 분야에서든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하게 아름답다.

죽은 남아의 목에는 탯줄이 둘둘 감겨져 있었다. 마치 그것이 불쌍한 어린 생명의 목을 조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탯줄의 끄트머리는 뒤이어 태어난 누이의 자그마한 손아귀에 꽉 잡혀져 있었다. 마치 누이가 제 쌍둥이 동생을 살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천당문』 전 3권/진산 지음/시공사/6천800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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