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효율성에 자리를 내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한때 낭만을 간직했던 대구시민야구장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더 높은 효율성을 지닌 야구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됐다. 낡고 비좁고 차 대기가 어려운 대구시민야구장은 "이런 곳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등 온갖 조롱에 시달리고 있다.
안 될 일이다. 대구시민야구장과 작별하게 될 날을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무지막지한 안녕을 고할 수는 없다. 대구시민야구장은 선수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서린 곳으로 전국을 뒤흔들던 대구 야구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황규봉, 우용득, 이만수, 권영호, 류중일, 김상엽, 이승엽 등 대구의 야구 스타들이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자라나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호령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야구장 스탠드가 흙잔디로 돼 있었고 관중석 둘레에 나무를 심어 유난히 햇볕이 뜨거운 야구장 관중석에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바로 그곳에서 선수들은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고 관중들은 원초적인 응원의 열기를 뿜어내거나 선수들에게 정겨운 격려의 말을 건넸다. 때로 거친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서투른 응원과 해학 가득한 외침으로 주위의 관중들을 웃음 짓게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스포츠는 더 세련됐고 관전 문화도 매끄러워졌다. 야구도 더 좋은 구장에서 볼 때가 되었다. 그래서 대구시민야구장은 낡은 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대구시민야구장을 천대하는 것은 과거의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구시민야구장은 대구 야구의 한 시대를 지켜온 기념비적인 건물로 퇴장-대구시 계획에 따르면 대구시민야구장은 새 야구장이 건설되어도 아마추어 야구 경기장으로 남게 된다-할 때까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대구시민야구장을 대체할 대구 '돔 구장' 건설 계획에는 진척된 내용이 별로 없다. 대구시에 따르면 3만 석 규모의 돔 구장을 대구체육공원 내 야구장 후보지 14만4천여㎡ 중 5만여㎡에 사업비 3천747억 원을 들여 짓기로 돼 있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건립 비용을 댈 민간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느냐 하는 점과 돔 구장을 짓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후 막대한 유지 비용을 감당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대구시가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으나 눈에 띄는 성과는 없는 상태이다. 민간 자본 유치에 성공, 돔 구장을 짓게 되더라도 착공 시기는 2011년이 돼야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돔 구장을 건립하고 유스호스텔 등 부대시설을 짓게 되더라도 막대한 유지 비용을 감당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은 더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6개의 돔 구장이 있는 일본의 경우 도쿄돔이 겨우 수지를 맞추는 정도이고 다른 나머지 돔 구장들은 수익을 올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1년 365일 중 돔 구장 청소에 필요한 40~50일 정도를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구장을 운영하는데도 흑자를 내기가 빠듯한 형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 돔 구장'이 온갖 행사를 따와 연중무휴로 구장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현실성이 떨어지는 돔 구장 대신 건설 비용이 돔 구장의 절반 규모인 일반 야구장을 짓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도 예전에 돔 구장 건립과 관련해 타당성 조사를 했지만 결과는 '타당성 없음'으로 나왔고 일반 야구장 건설 방안으로 기울고 있다. 새 야구장을 지을 바에야 이왕이면 '돔 구장'으로 하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굳어져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이어서 돔 구장의 효용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옥외 경기인 야구를 굳이 지붕으로 가려가면서 보는 것보다 탁 트인 야구장에서 보는 것이 낫다는 견해이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준우승의 성과를 거둔 직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구를 비롯, 광주 대전 등 낡은 지방 야구장 개선 방안을 언급했고 한 국회의원은 지방 야구장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한 입법 추진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대구의 새 야구장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따져볼 때이다.
김지석(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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