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 in 여성]대구여성환경연대 심현정 대표

사회운동가에겐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네 살 때부터 고3까지 15년간 발레를 하던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데모 행렬 가장 앞자리에 서서 구호를 외치더니 지금은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그 특별한 유전자 없이 가능한 일일까.

대구여성환경연대 심현정(38) 대표의 길지 않은 인생은 기자에게 재미있게 다가왔다. 아이에게 먹일 만한 먹을거리가 없어 시민단체를 만들고, 아이를 맡길 만한 제대로 된 어린이집이 없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부딪히는 삶의 문제를 사회운동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인다.

"제 인생이 운동 인생으로 소위 '꼬이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붙여준 과외선생님 때문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 언니가 경북대에서도 알아주는 운동권이더라고요."

4세부터 해오던 발레 전공을 포기하고 일반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고 3때 만난 과외선생님은 그에게 '입시 공부' 대신 '인생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참고서 밑에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숨겨 놓고 엄마 몰래 토론을 일삼았다니, 후에 어머니가 통탄하셨을 일.

'운동권 유전자'가 외부에서 심어진 케이스다. 하지만 그 유전자는 그의 삶을 토양으로 풍성하게 대구 시민운동의 발자취를 바꾸어 나간다.

'무용학과'와 비슷해서 대구가톨릭대(당시 효성여대) '무역학과'를 입학한 그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시국을 고민한다.

"대학에서 문화패 활동을 하면서 데모도 많이 했어요. 사상적 갈등도 많이 했지만 결국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YMCA로 발을 들여놓았지요."

졸업 후 서울에서 한국YMCA전국연맹 간사를 하면서 대학생과 청소년 YMCA 운동을 이끌었다. 세계YMCA 사무총장이 열정적인 그를 눈여겨보고 스위스YMCA에서 일해보라고 적극 권유할 정도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살아오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손해 본 건 없어요. 오히려 특혜가 많았죠.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여자임을 절감했어요."

그는 '예수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 꿈인 운동가 남자를 만나 서로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결혼을 했다. 그런 그가 왜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눈을 돌려야 했을까.

"아이를 가진 후 과연 내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좋은 것을 챙겨 먹지도 못했고, 생활도 불규칙했기 때문이에요. 밖에서 환경운동을 논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궁, 내 몸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 남편은 밀양에서 지역운동을 하며 영역을 넓혀 갔지만 심씨는 임신 때문에 모든 활동을 접어야 했다. 수입이 없어 한 때 1년가량 팬티가게를 한 적도 있다. 만삭의 몸으로 셔터문을 여닫는 것도 모자라 레스토랑 화장실에 갇혀 밤을 지새우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는 고생을 했다. 하루 매출이 300만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그는 가게를 단호히 접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살면 패 꼬이겠구나"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다시 대구로 와서 '대구녹색소비자연대'를 맡았다. 아이를 키우자니 부딪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마음 놓고 먹일 먹을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녹색살림생협'을 만들었다.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어린이집이 없어 '바람과 햇살'이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기도 했으며 내친김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이거다' 싶은 곳에는 저돌적일 만큼 열정적으로 내달리는 그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그래서 2007년 대구여성환경연대를 만들었고, 지금은 회원이 250여명이나 된다. 시민운동에서는 받아 안기 어려운 '대안의료'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구당 김남수옹을 만나 실마리를 풀었다.

"옛날에는 아프면 할머니들이 손을 따주셨잖아요. 하지만 근대화가 되면서 의료가 전문인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모두가 '대상화'가 된 거죠. 구당 선생님 의학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해석이 되더라고요. 2007년부터 침과 뜸을 배웠죠."

그는 '누구나 자기 몸이 자기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환경연대는 대안의료와 대안교육, 대안문화를 고민한다.

"요즘 소녀들은 너무 일찍 화장을 시작해요. 하지만 화장품의 각종 유해화학물질은 여성질환에 치명적이거든요. 그래서 천연화장품 만들기 운동을 하고 채식주의 모임을 만들었어요." 특히 설거지'청소'빨래 등 여성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람처럼 관심을 옮겨 오며 불처럼 뜨겁게 그 화두를 붙잡고 늘어지는 그녀. 다음의 화두는 무엇이 될까.

"몸의 자연치유에 관심이 많아요. 단식 캠프 등을 통해 몸이 자연치유되는 것을 많이 봐왔거든요. 그것이 당분간 제 화두가 되지 않을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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