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한데 국수 한 그릇 어때?"
점심시간이면 자주 오가는 말이다. '국수'라는 말에는 '짧은 시간' '싼 가격' '가까운 곳'이라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숨어 있다. '정식'이 아닌 국수 한 그릇 함께 나눌 정도면 이미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구 사람들은 전국에서 국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누른 국수, 잔치국수에 쓰이는 건면의 1인당 매출비율이 인구대비 전국에서 최대 판매량을 자랑한다.
대구시가 지난해 발표한 '대구 음식산업 발전전략'에 따르면 전국 73개 점포를 가진 대형매장의 경우 2007년 건면 매출 10위 점 안에 대구의 5개 매장 중 3개 매장이 포함된다고 하니, 대구의 '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 줄 서는 음식점 중에도 국숫집이 유난히 많다. 웬만큼 맛있지 않고서야 음식점 앞에서 줄서는 풍경을 발견하기 힘든 대구에서 유난히 국숫집 앞에만은 줄이 길다.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서민들의 음식 국숫집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누들(noodle) 기행'이란 제목으로 경상도의 국수에 대해서 탐방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경상도가 국수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경상도 사람들이 국수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칼국수의 고향은 경상도라고 말한다. 그는 "칼국수는 명백한 경상도 음식이다. 칼국수를 포함한 모든 국수가 6세경 통일신라시대에 탄생해 진상품으로 관리됐고 특히 칼국수는 경상도 충청도 등 남쪽지방에서 별식으로 취급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주로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밀가루 소비가 급증하면서 밀가루 국수가 주종을 이루게 됐고, 국수는 1970년대 경제성장기부터 급격히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제분력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밀은 지금처럼 고운 가루 형태를 띠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바쁜 와중에도 국수에 사치를 부렸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씨에 따르면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영천의 마을에는 국수방이 있었다고 한다. 국수방에는 한지를 바르고 그곳에 밀가루를 쌓아 놓은 다음 바람을 일으켜 고운 가루를 낸 후 그 가루로 건진 국수를 만들었다는 것. 더 고운 가루를 얻기 위해 이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쉽고 간단하게' 먹는 오늘날의 국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 1650년경 유학자 이시영의 부인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는 국수 만드는 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바가지에 구멍을 뚫어 녹말풀을 담고 끓는 물 위에 높이 들고 국수를 뺐다고 한다. 면발을 가늘게 하기 위해선 바가지를 높이 들면 된다고 나와 있다. 이처럼 국수는 지금과는 달리 별미였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면을 끓는 장국에 넣고 끓이면 제물국수,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넣어 건져 사리로 만들어 국물에 만 것은 건진국수라고 한다. 얇게 민 반죽을 칼로 가늘게 자른 것을 칼국수라고 하며 칼싹두기라고도 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가늘게 썰어 만드는 칼국수는 햇밀을 거둬들이는 유두절을 전후해 먹는 시절음식의 하나였다. 여름 별미였던 셈이다. 닭고기 국물에 애호박을 채썰어 넣고 끓인 칼국수는 여름철에 입맛을 돋워주는 요리였다.
조선시대는 전통 국수요리만 해도 50여종, 수제비가 15종이 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수 만드는 법과 요리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만다. 대신 골목마다 한 두개쯤 자리 잡고 있는 칼국수와 잔치국수로 국수 메뉴가 점차 통일되고 있다.
대구시는 2006년 누른국수를 대구 10대 향토 먹을거리 중의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누른국수는 사골 해물 등을 넣지 않고 멸치국물을 맛국물로 쓰는 것이 특징.
값싸고 간편한 서민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국수를 대구 사람들이 특히 즐기는 이유는 뭘까.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대구가 피란지였던 만큼 따로국밥'국수 등 피란음식이 발달했고, 패스트푸드 격이어서 상인들이 많은 대구에서 사랑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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