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진행돼 지난 88년 동안 지켜져 왔던 보행자 좌측통행이 올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우측통행 체제로 바뀌게 된다. '차는 우측으로 사람은 좌측으로.'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던 좌측통행은 관습의 하나로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박여 있다. 그러나 최근 각 분야별로 사안에 따라 우측통행 형태가 제시되면서 곳곳에서 충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하철 개찰구, 회전문은 물론이고 공항이나 각종 전시회 등도 우측통행으로 자리잡아 적잖은 혼란을 빚고 있다.
우측보행이 일반적인 세계적 추세에 따른다는 점과 일제(日帝) 잔재의 청산이라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좌측통행이 굳이 불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교통체계를 바꿀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 전환 배경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29일 '제12차 국가경쟁력강화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현행 좌측통행 보행문화를 우측통행 원칙으로 전환하는 보행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보행자와 보행자 간에는 보행의 편의, 심리적 안정성, 국제관행을 고려해 우측통행으로 전환하고 차량과 보행자 통행은 현행 좌측통행 방식을 도로의 여건에 맞도록 차량을 마주보고 통행하는 '대면통행'으로 바뀐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차량과 마주보고 통행'하고,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도로의 인도에서는 차도에 가까운 보행자가 차량과 마주보고 통행할 수 있도록 바뀐다. 횡단보도는 진입하는 차량과 원거리 확보를 위해 우측통행을 권장한다.
◆ 기대 효과
국토부는 우측통행을 할 경우 차량과 보행자 간 비대면 통행이 대면통행으로 전환됨에 따라 보행자 교통사고가 20%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그 근거로 2002년부터 2007년 사이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의 보행자 사고 통계를 들었다. 이에 따르면 대면통행 보행자 사고건수(8천656명)가 비대면통행 사고건수(1만2천618명)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국토부는 연간 사망자(70명)와 부상자(1천700명)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이에 따른 인적 피해비용(711억원)과 심리적 피해비용(734억원) 역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시뮬레이션 결과 보행속도 증가(좌측통행 대비 1.2~1.7배), 충돌 횟수 감소(7~24%), 보행밀도 감소(19~58%) 등의 효과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토부는 좌측통행은 사람의 신체 특성이나 교통안전 및 국제관례에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 국민의 88.3%가 오른손잡이인 상황에서 보행심리가 우측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토부로부터 연구 용역을 의뢰받은 한국교통연구원의 선호의식 실험에 따르면 73.3%가 우측통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단보도를 건널 경우 이제까지 다른 곳은 좌측통행인데, 횡단보도에서는 우측통행으로 표시돼 있다.
이는 정지하려는 차량과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좌측통행 원칙에서는) 고육책이었으나, 이제는 예외 지역이 아닌 정당한 횡단 방법이 될 것이다. 차량과의 상충은 물론 보행자 간 상충도 우측통행이 유리하다. 국민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인 것을 감안하면 왼손보다는 오른손으로 대부분의 짐을 들게 되고 짐은 마주 오는 사람과는 반대편에 위치, 짐과 사람이 충돌하는 횟수도 줄어들게 된다.
◆시민들의 반응
7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정부의 우측통행 방침에 대해 묻자 권수민(고교 2년) 양은 "별다른 의식없이 통행하고 있어요. 우측통행이 편리하다면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K씨는 "좌'우측 통행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느끼지 않는다"며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좌'우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고 통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반월당 YMCA 유치원 앞. 하굣길 어린이들이 우측통행을 지키고 있었다. 박슬기(23'유치원 교사)씨는 "5세 때부터 어린이들이 인도는 물론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 반드시 우측통행을 시킨다"며 "우측통행이 어린이 안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각급 학교서는 아직 시행되지 않은 우측통행에 대해 준비조차 안돼 있지만 일부 어린이집 등 우측통행의 장점을 인식해 미리 대비하는 곳도 있었다.
◆조기정착 시키려면
거의 90년간 지켜져 왔던 좌측통행의 관습을 짧은 기간 내에 정착시키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보행자를 위한 시설과 잠재의식이 단기간 내에 고쳐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강승규 교수는 "우측통행의 조기 정착을 위해 기존 좌측통행을 기준으로 설치된 인프라 시설들을 교체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업과 달리 연차적으로 교체할 사안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추진돼야 하고 이에 상응한 예산도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의 주체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되어야 사업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교통 약자인 어린이와 노령층에 대한 안전교육 선행과 함께 어린이 교육에 필요한 교통안전 교재의 개편과 효율적인 재교육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예산지원과 지자체의 신속한 보행자 인프라시설 교체 등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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