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귀 난치병 박정호씨의 '특별한 스승의 날'

야윈 두손 모아 카네이션 드립니다

▲ 대구 이곡중 도기호 선생님이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10여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희귀성 난치병인 진행성 근육병에 걸린 제자 박정호씨와 어머니 김말순씨에게서 카네이션을 받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대구 이곡중 도기호 선생님이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10여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희귀성 난치병인 진행성 근육병에 걸린 제자 박정호씨와 어머니 김말순씨에게서 카네이션을 받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대구 달서구 용산동 한 아파트에서 특별한 카네이션 전달식이 있었다. 참석자는 단 세명. 선생님과 제자, 어머니뿐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니라 참석자 모두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 숙연한 자리였다.

진행성 근육병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박정호(26)씨와 그의 어머니가 박씨의 중학교 은사였던 도기호(51·대구 이곡중 교사) 선생님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어쩌면 아들이 주는 마지막 카네이션이 될지도 몰라 어머니도, 아들도, 선생님도 눈물을 보였다.

이들 사제의 인연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호씨는 와룡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초교 때부터 진행된 근육병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정호씨를 매일 등·하교시키면서 비라도 내리면 자신은 비옷을 입고 아들은 우산을 씌워 휠체어를 밀었다.

이 모습에 감동받은 담임교사 도씨가 정호씨를 보살피는 데 동참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찾아가 정호씨를 챙기고 격려했다. 학생들을 도우미로 배치해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하교시간에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손수 정호씨의 휠체어를 밀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정호씨가 3학년이 되자 자신의 반으로 배치시켰다. 교실도 특별히 1층 교무실 옆으로 배정받았다. 도 교사는 "웬만하면 3학년 담임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1998년에는 정호 때문에 기꺼이 담임을 맡았다"고 했다.

어머니 김씨는 "나날이 야위어가고 하루 2시간 수업도 견디기 힘들었던 정호가 그렇게 소원하던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선생님 사랑 덕분"이라고 말했다.

도 교사의 '정호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정호씨 친구들이 고교를 졸업하자 이들을 데리고 정호씨 집을 찾기도 했고, 집앞을 지날 때면 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도 교사가 찾아와 바싹 말라버린 정호씨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글썽이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많았다.

지난 11일 어머니는 "아이의 소원을 이뤄준 선생님의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다"는 사연을 적어 본사에 보내왔다. 김씨는 "가슴이 따뜻한 참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병을 앓아 온 정호가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것도 선생님의 인성 교육과 사랑 덕분"이라고 했다.

슬프지만 도 교사의 제자 사랑은 영원한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정호씨의 몸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 교사는 "이젠 전화로 정호의 안부를 묻기조차 두렵다"고 걱정했다. "'정호가 당장에라도 우뚝 서서 걷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며 생각한 적이 한두번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정호가 좀더 건강해져 자주 만날 수만 있어도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