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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독도] 역사②-첫 기록과 고려시대

▲ 14일 오전 10시부터 독도 접안장 옆 해변에서는 독도 그림만 10년째 그려온 재미아티스트 권용섭(51)씨가
▲ 14일 오전 10시부터 독도 접안장 옆 해변에서는 독도 그림만 10년째 그려온 재미아티스트 권용섭(51)씨가 '독도 화가' 주제의 다큐멘터리 촬영 겸 퍼포먼스를 펼쳤다. 뒤쪽 외국인은 'Dokdo-Takeshima.com' 운영자인 캐나다인 스티븐 바버씨와 라아언 세일리씨.

역사시대 이전의 시대는 신화시대이다. 신화의 시대는 '구전(口傳)의 시대'이고 역사의 시대는 '기록의 시대'이다. 물론 구전의 시대라고 해서 역사의 나이테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존의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도의 역사에 있어, 지증왕 13년(서기 512년)을 우리나라가 독도를 처음 편입한 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어떤 문헌에도 당시부터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확인해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사료에 근거한 삼단논법에 의한 증거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지증왕 13년 우산국을 정벌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900여년이 지난 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도 무릉도는 신라시대 우산국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만기요람도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천명했다. 고로 독도는 지증왕 13년부터 우리나라 땅이었다.

전체적 맥락에서 볼 때 이는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인접한 나라 일본이, 나아가 국제사회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주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울릉도와 독도가 자연·인문적 측면에서 볼 때 모자(母子)관계의 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영남대 김호동 교수 저 '독도·울릉도의 역사')

그렇다면 이후 고려시대에는 독도에 관한 기록이 없는가? "우릉도에서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 방물을 바쳤다. 백길에게 정위(正位), 토두에게 정조(正朝) 품계를 각각 주었다."(고려사 권1 태조 13년 8월)

우산국이 다시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서기 512년 이후 약 400년이 지난 후삼국시대 930년에 고려에 토산물을 바쳤다고 간략하게 나온다. 다시 고려사 헌종 9년조(1018년)에는 '우산국이 동북 여진의 침략을 받아 농사를 짓지 못해 관리를 파견하여 농기기를 주었다'고 적고, 헌종 13년조에는 '여진에게 약탈당하고 도망온 우산국 백성들을 예주(禮州)에 배치하고 식량을 주도록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려사에는 인종·의종·고종 시기 등에서 간헐적으로 우산국 또는 우릉도·울릉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어디에도 독도를 추정할 만한 어떤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일본 측에도 울릉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권기'라는 사료에는 "고려의 번도(藩徒)인 울릉도 사람들이 표류해왔다"고 적고 있어, 그 즈음에도 일본이 울릉도가 고려의 땅임을 명확히 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문헌에 직접적으로 독도가 처음 오른 것은 언제일까?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인 대죽(大竹) 수우피(水牛皮) 생저(生苧)… 등을 바쳤다"(태종실록, 태종 17년 2월 임술)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 "우의정 한상경, 6조·대간에 명하여, 우산·무릉도의 거민(居民)을 쇄출하는 것의 편의 여부를 의논케 하니, …무릉의 주민을 쇄출하지 말고 오곡과 농기를 주어…김인우를 그대로 안무사 삼아 도로 우산·무릉 등지로 들어가 그곳 주민을 거느리고 육지로 나오게 함이…"(태종실록 태종 17년 2월 을축)라고 적고 있다.

1417년 2월 5일과 8일 조(條)에서 확실하게 우산과 무릉 두 섬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실록에서는 '우산도를 독도' '무릉도를 울릉도'로 확연히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고 혼동하여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한 해 앞서서는 조선 조정이 김인우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삼아 파견했는데, 1417년 기록은 그 결과에 대한 처리를 논의한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인우를 파견할 때 '무릉도'가 아닌 '무릉등처' 안무사로 삼았다는 점.

이로 미루어 볼 때 조선은 무릉·우산 두 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다시 20여년이 지난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와 조선 초기를 통틀어 독도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1416년 '무릉등처안무사'를 파견하고 1417년 주민을 데리고 나오므로 독도를 우리 땅으로 직접 관리했다는 것을, 구전이 아닌 사료로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최소한 1400년대 초부터 독도를 직접 관리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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